판타스마고리아

<아이하트, 투표 지옥>




가장 큰 위협은 베스트 팬덤 부문에 후보로 함께 오른 한국의 또다른 아이돌 엑소 팬덤이었다. 사실 서양 가수들 중에도 비욘세나 원디렉션 팬처럼 강력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팬덤이 있지만, 투표에 한해서만 말하자면 과연 케이팝 팬들을 따라올 팬덤이 있을까 싶다(트럼프 당선을 위해 기계처럼 리트윗을 했던 러시아 봇들의 양쪽 뺨을 후려치는 수준이다). 


자기 가수 신곡이 나왔을 때 숨쉬는 것처럼 스트리밍을 해서 차트 상위권에 줄을 세우고, 연말 시상식 인기투표에 조직적으로 총공세를 퍼붓는 것이 일종의 팬문화로 자리잡은 케이팝 팬덤 그 가운데서도 한국팬들의 투표 능력치는 기네스 기록만 없을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엑소는 SM이라는 대형기획사가 배출해낸 숱한 그룹들 가운데서도 역대 가장 강력한 팬덤 화력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온라인상 어떤 투표라도 방탄과 엑소 팬덤을 붙여놓으면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활활 타올랐고, 아이하트 투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미와 엑소엘(엑소 팬덤)이 붙자 투표수가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어떤 날은 아미쪽 투표 수만 하루에 천만표 이상이 집계된 날도 있었다. 트위터 한 계정당 50번으로 제한된 투표 룰 때문에 수많은 아미들이 오직 투표를 위해 여러개의 트위터 계정을 새로 파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의 투표가 끝나면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가서 또 50번씩 투표를 하고, 그게 끝나면 페이스북으로 가서 다시 또 50번.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이런 투표 루틴을 수많은 아미들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반복했다. 두달에 걸친 길고 긴 투표기간에 지칠대로 지친 아미들 사이에는 한때 '투표 지옥'이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돌기도 했다. 



화력 면에서는 상대가 안됐지만, 후보에 오른 가수 쪽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투표 홍보에 나서는 바람에 긴장을 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베스트 보이밴드 후보였던 남미밴드 CNCO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그룹은 모든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투표를 독려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들이 한번씩 트윗에 투표 독려글을 올리면 수만개의 리트윗이 실시간으로 쏟아졌고 이는 바로 투표수로 집계되었다. 


아무리 아미 팬덤의 인원 수가 많다해도 60일 동안 이뤄지는 장기 레이스에서 이길수 있는 방법은 투표의 일관성 유지 즉 매일 숙제하듯 성실하게 투표를 하는 것뿐이었다. 낮 시간 동안 아시아권 아미들이 투표를 마치고 잠이 들면 지구 반대편 서양 아미들이 일어나 투표를 이어받았다. 


매 시간 투표수 합산치를 발표하고 2위와의 실시간 격차를 공지하는 글로벌 통계 계정, 온갖 방법으로 아미를 웃게 하면서 즐거운 투표를 위한 아이디어를 짜낸 각 나라의 투표 독려계 계정, 그리고 개인 아미들이 한 몸이 되어 60일을 마치 마라톤처럼 달렸다. 


결국 팬덤 부문에서는 엑소엘이, 보이밴드 부문에서는 CNCO가 발목을 잡고 늘어졌던 이 투표에서 아미는 경쟁 후보들을 전부 1억표 이상의 차이로 크게 따돌리며 두 개의 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마침내 아이하트 시상식이 열리던 날, 방탄소년단은 시상식에 불참한 대신 트위터를 통해 아미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메시지를 본 아미들은 “이 한마디에 지난 고생이 모두 눈 녹듯 녹아버렸다”며 두 달간의 투표 지옥을 웃으며 떠나보냈다. 




ps 1. 아이하트가 끝나자 바로 니클로디온 키즈초이스, 스페인 시상식, MTV 남미 시상식, TIME 100인 투표가 연달아 발표됐다. 아미의 글로벌한 투표 지옥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 


ps 2. 한편 저는 아이하트 투표를 위해 트위터 계정을 총 몇개까지 만들었을까요? 확실한건 몇개를 기대하든 그 이상일 거라는거 ㅎㅎ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