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고리아


<방탄소년단 팬덤, 세계 주류문화 질서를 뒤흔들다>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의 어마어마한 해외 인기를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곧잘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춤이 멋있어서, 얼굴이 잘 생겨서, 또는 SNS 시대의 수혜를 톡톡히 받아서라고. 


물론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방탄소년단에게 관심을 가지는 동기가 될 순 있지만, 서구 미디어가 한 목소리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헌신적인 팬덤”이라 평가하는 열정적인 방탄 팬덤의 행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서구에서 방탄이 이뤄낸 이제까지의 성공, 그리고 앞으로의 성공까지도 ‘전적으로 팬들 손에 달려있다’고 보는 게 현재 서구 미디어가 공유하는 시각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의 보이 밴드, 그것도 거의 모든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가수의 세계적인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앨범과 음원을 몇개씩 반복해 사들이고, 하루종일 음원을 스트리밍하며, 온갖 시상식에 엄청난 투표 화력을 쏟아붓는건 물론, 미디어와 라디오에 조직적으로 홍보를 하는 방탄 팬덤. 특히 해외 팬덤이 보여주는 열광과 헌신 대신,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일화를 먼저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이 일화의 트위터 원문은 @AskAKorean)



1997년 나는 한국에서 LA로 이민을 왔다. 


미국에 오기 전 영어 코스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ESL 수업을 듣지 않고 곧바로 10학년 정규수업에 편입하게 됐다. 그날은 생물수업을 두 번째로 듣는 날이었다. 수업시간에 퀴즈를 봤는데 생물 담당인 갤러허 선생님은 이제 막 전학을 왔으니 퀴즈는 안 봐도 된다고 했지만 어쨌든 시험지는 건네주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그 시험지를 마치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한다. 


‘광합성’에 대한 문제였다. 식물의 잎이 그려진 도표가 있었고, 그 잎으로 어떤 종류의 가스가 들어오고 무엇을 뿜어내는지를 쓰는 문제였다. 약 5분 정도 그 문제지를 쳐다보는 동안, 나는 좌절감으로 인해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광합성에 대한건 한국에서 7학년(주: 한국의 중학교 1학년)때 이미 배운 거였다. 나는 모든 답을 알고 있었다. 단, 그게 영어가 아니었을 뿐. 


이 시험이야말로 내가 새로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나는 모든 이들이 나같은 기분을 한번쯤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갑자기 멍청이가 되는 것 같은 기분.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약 5분후, 나는 답을 한국어로 적기 시작했다. 갤러허 선생님은 시험을 안 봐도 괜찮다 했지만 어쨌든 빈 답안지를 내긴 싫었다. 내가 갑자기 멍청이로 변한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이틀 후, 갤러허 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최고점은 만점을 받은 TK란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놀라서 내 시험지를 쳐다봤다. 한국어로 쓴 답안에 모두 채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어눌한 영어로) 선생님께 어떻게 채점을 매셨냐고 여쭤봤다. 그분은 내 답안지를 한국계 미국인인 수학 선생님께 보여 주였다고 했다. 그 수학 선생님도 한국어를 썩 잘하는 건 아니라서 한국어 사전까지 동원해서 내 답안지 채점하는걸 도와줬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이때 일을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자신의 학생을 위해 갤러허 선생님이 한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그 시험이 내 성적에 포함되지 않을거라 말했으므로, 그녀는 내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시험지를 채점한 바로 그 순간이 내 미국 이민생활의 행로를 바꿔놓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게 아니라는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되는 것,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영어를 배웠다.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내 졸업 연설은 마치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한 장면 같았다(주: 왕따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코미디영화). 횡설수설에 심한 외국인 액센트까지, 끔찍했다. 동급생들 표정도 황당해보였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단상에서 내려오라며 야유를 퍼붓지는 않았다. 


졸업 후 나는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로스쿨에 들어갔다. 지금 나는 변호사인 동시에 세상과 글로 소통하는 작가이다. 내가 영어로 쓴 글을 학생들에게 샘플로 보여준다는 작문 교수들의 말을 전해들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존 켈리(주: 백악관 비서실장)같은 멍청이가 비영어권 이민자는 미국에 동화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면, 나는 항상 갤러허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미국에는 아직 존 켈리 같은 사람보다는 갤러허 선생님 같은 사람이 더 많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제발 기억하길 바란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걸.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해외로부터 새롭게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새롭게 이 땅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를 바란다. 


바로 당신이, 누군가의 갤러허 선생님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주말 아침, 아직 잠에서 덜 깬 채로 트위터에서 이 글을 읽다가 나는 말 그대로 소리내어 울었다. 내용 자체가 인도주의적이기도 했지만, 열 살 무렵 내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2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막 마친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에 왔다. 지금이야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지만, 삼십여 년 전 그때 알파벳은 중학교나 가서야 배우는 거였다.


내가 살던 어배나(Urbana)엔 큰 대학이 있어서 아버지처럼 교환교수나 연구원으로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 동네에서는 그 자녀들과 한국어로 맘껏 뛰어 놀았지만, 학교에서는 달랐다. 한마디도 못하는 멍청이였다 나는.  


급식 시간이 내겐 악몽이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걸 알고 나를 괴롭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애들이 더 잔인하다. 디저트로 간만에 뭔가 맛있는게 나올때면, “너 이거 먹을거야? 안 먹을거지? 안 좋아하지?” 내가 틀린 대답을 할때까지 긍정문과 부정문을 섞어 다다다다 물어보는 애들한테 여러 번 후식을 뺏기곤 했다. 알겠지만 영어는 한국어와 긍정/부정 체계가 달라서 “안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걸 좋아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해선 안된다. 그럼 디저트를 뺏긴다.        


급식 시간 내내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간혹 다가오는 애들은 그렇게 놀리며 내 디저트를 뺏어가는 애들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내게 같은 반 애들 두엇이 다가왔다.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하고 있는데, 생글거리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예쁜 빨간색 하트 스티커였다. 설마 이걸 내게 주는건가? 하는데 손짓발짓 끝에 알아들은 말이 스티커를 살 생각 없냐는 거였다. 한참 고민 끝에 그래도 혹시나 이게 일종의 우정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스티커를 샀다. 


문제는 몇 시간 뒤 일어났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숙제에 잘 했다는 표시로 붙여주는 스티커가 없어졌다는 거였다. 바로 내가 산 그 스티커였다. 스티커 종이에서 막 하나를 떼어 노트에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눈길이 내게 쏠리고 숨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두가 내 손에 든 스티커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프도록 알 수 있었다. 나는 온 영혼을 다해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그 스티커를 사게 되었는지 내 짝꿍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보던 흑인 짝꿍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담임선생님에게로 갔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느낌상)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한 말은 잘 알겠어. 하지만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자”. 


아, 이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 아니면 귀찮아서든 뭐든 최소한 이 오명에서 나를 건져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 나는 그렇게 영어도 못하는 바보인 동시에 도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갤러허 선생님같은 분이 없었다. 그저 운이 없었다 해두자. 


길든 짧든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타언어권에서 순식간에 멍청이가 되는 느낌을 한번쯤은 맛봤을 것이다. 좀 더 머리가 큰 뒤 대학원 때문에 다시 미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토론 참여가 필수인 비평 수업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데만 시간을 다 보냈다. 말을 하면서 정리가 된다는 것은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 내가 몇시간 동안 만들어놓은 문장을 겨우 뱉으면 수업이 끝났다. 그동안 네이티브들은 별 통찰력도 없어보이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즐겁게 수업을 장악했다. ‘한국말로 했으면 니들은 다 죽었어’는 그저 마음의 소리일뿐, 언어의 장벽 앞에서 나의 지성은 무용했다. 1세계의 벽 앞에 선 제 3세계 인구의 서글픔이었다. 


방탄소년단 해외 팬덤을 관찰하면서 내가 참 흥미롭다 느꼈던 것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이런 좌절감이 역전돼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네이버 V앱의 <달려라 방탄> 같은 몇몇 컨텐트를 제외하고, 방탄의 대부분 컨텐트는 영어 자막이 없는 채로 나온다. 물론 채 얼마 되지 않아 자발적인 팬 번역가들 일명 ‘번역계’가 자막본을 내놓지만, 그 시간동안 타들어가는 팬들의 속마음은 이런 짤을 유행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방탄 멤버가 V앱에서 라이브 방송이라도 할라치면, 장장 1시간 가까이를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버텨야한다- 물론 그 순간에도 수억개의 하트와 수십만개의 댓글을 날리는걸 잊지 않는다. 라이브 방송처럼 이렇게 긴 컨텐트의 경우, 제대로 된 번역본이 뜰 때까지 이틀 내지 삼일이 걸릴 때도 있다. 


그뿐인가. 앨범이나 콘서트 소식 등 중요한 공지를 대부분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하는 기획사 때문에, ‘twelve hit phobia’ 즉 ‘열두시 땡 공포증’이라는 말이 외국 팬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돌았다. 한국 팬들이야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편안히 공지를 받을 수 있지만, 바쁜 아침 시간이나 한참 회사나 학교에서 일과 중인 외국 팬들에게, 이 한국시간으로 자정은 너무나 가혹한 타임라인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말로 노래하는 가수의 팬이 된다는 게 이런 거란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늘도 수백만의 외국 팬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한국 시간(KST)으로 설정해 놓는걸 잊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방탄의 해외 팬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기다림과 답답함을 벗 삼은 채 일상의 바이오리듬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언어와 시차의 위계가 역전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디 너희들이 당하니까 어떠냐? 우리 비영어권 출신의 괴로움을 이제 알겠지?“ 같은 고소한 마음이 내심 안드는건 아니지만, 나는 이 현상 이면에 훨씬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방탄소년단의 팬인 라프란즈 데이비스(@RafranzDavis)는 <MEDIUM>에 기고한 <한 케이팝 그룹이 어떻게 나를 장벽 너머로 이끌었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직업 때문에 전 세계의 교육자들과 교류했지만 한번도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때론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도 가르쳐봤지만,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 적이 없었다. 결국엔 그들이 영어를 배워 언젠가 나와 영어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BTS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장벽과 편견이 존재한다. 그런 장벽을 만날 때면, 마치 내게 있어 BTS 같은 존재가 나타나, 여러분이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1세계 시민으로서의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 없는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 됐을 때 겪는 이런 역지사지의 순간들은, 당혹감과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타 문화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준다. 


게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탄 팬덤에 깊숙이 들어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 노래 가사를 들으며 울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탄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오열하기 시작하는 외국 팬들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세계 평화는 정치가들 손에 달려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방탄의 팬 번역가들이 아무리 성실히 그리고 재빨리 번역을 한다 해도,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 답답함 그리고 한국어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의 공백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례로, 해외 팬들은 초창기 방탄의 스타일링이나 발언에서 흑인에 대한 미묘한 인종주의적 선입견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표시했다(이는 비단 방탄뿐 아니라 케이팝 전체에서 곧잘 발견되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멤버의 진솔하고도 구체적인 사과가 나오자, 서양권 문화의 특성상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고쳐나가려는 태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팬덤은 더욱 강력하게 결속되었다.  


문화와 문화가 감정적으로 서로 이어질 때의 감동. 게다가 세계 질서 아래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고 비주류의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주류 문화권 팬들의 태도에서 나는, 희망없는 세계에 불어오는 시원한 찬바람 한줄기를 느꼈다. 전지구적 주류문화 질서 아래서 앞으로도 나는 종종 ‘멍청이가 돼버린 기분’에 사로잡히겠지만, 최소한 세계의 한 켠에서는 문화 교차를 통한 ‘역지사지’, 그로 인한 타인에 대한 더 넓은 이해가 실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말이다.    


시작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였지만, 점점 서로의 문화와 언어에 새겨진 ‘차이’와 ‘같음’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도록 계기가 되어준 방탄소년단에 감사한다. 더불어, 곧 발매될 새 앨범 Love Yourself: TEAR의 세계적 성공을 전 세계 아미와 함께 기원한다. 


Teamwork Makes the Dream Work!   




PS: 이번 에피소드는 팬 아닌 일반인들이 좀 더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오마이뉴스 블로그 뉴스에 올렸습니다. 아래 위젯은 오마이뉴스에 연동되는 건데, 원고료는 안주셔도 상관없지만 추천을 많이 눌러주시면 아무래도 일반인 분들께 좀 더 노출이 되지 않을까요. 이게 다 방탄 홍보다 생각하시고^^






Posted by 미와카주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