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고리아

*이 글은 문화/과학 2017년 여름호(통권 제90호, 2017.5)에 기고한 글입니다 



1. 연애드라마 왕국에 끼어든 판타지


흔히, 한국 드라마는 ‘기-승-전-연애’라고들 한다.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회사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보여주는 지나친 멜로 편향을 두고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다. 극의 소재 와 주인공이 가진 직업군이 다를 뿐 결국 달려가는 곳은 ‘ 연애의 완성’이라는 골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순전히 로맨스 구도를 위해 들러리처럼 동원된 드라마 속 배경의 부실한 재현에 대한 조롱도 포함된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한국 드라마의 이런 멜로 편향적 구도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간 이른바 ‘한국 드라마’라는 것은 <수사반장> <전설의 고향> 등 일부 장르 드라마를 제외한 대부분이 가족과 로맨스를 중심에 놓고 공전하는,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은하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변화의 중심에는 OCN, tvN 등 케이블 방송사와 JTBC를 주축으로 한 종편 채널이 있었다. 후발주자로서의 난점을 극복하고 공중파와 차별을 두기 위해, 또한 외국 드라마의 유입으로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이들은 장르물 드라마에 눈을 돌렸다. 


1995년 영화전문 채널 DCN에서 이름을 바꾸어 1999년 재출범한 OCN은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키드갱>(2007), <조선추리활극 정약용>(2009), <신의 퀴즈>(2010), < 특수사건 전담반 TEN>(2011), <뱀파이어 검사>(2011) 등의 장르드라마가 이 시기에 제작됐다. 2006년 개국한 tvN 역시 자체 제작 드라마의 활로를 장르물에서 찾았으며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 <갑동이>(2014), <시그널>(2016) 같은 성공작을 만들어냈다. 2011년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인 JTBC도 감염 재난극인 <세계의 끝>(2013), 조직범죄극 <무정도시>(2013), 추리극인 <선암여고 탐정단>(2014), 메디컬 재난극 <디데이>(2015) 등 본격 장르드라마를 쏟아냈다. 본격 장르물을 부담스러워하던 지상파 채널들은 ‘러브 라인’이 없다고 자신들이 고사했던 장르물이 케이블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기존의 보수적 전략을 조금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지상파의 장르 확장 움직임은 2010년 경부터 조금씩 가시화된다.


2010~13년에 방영된 지상파 TV 드라마를 분석한 연구[각주:1]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방송 3사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는 총 209편이었으며 의학, 역사, 가족, 정치, 요리, 법정물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 209편에 대해 이 드라마의 장르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묻는 질문에는 멜로 내지 로맨틱 코미디라는 답이 높은 비율로 1위를 차지했다. 소재를 다양화했을 뿐이지 결국 서사는 멜로 안에서 맴돌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TV 드라마는 남성 시청자에 비해 재택 시간이 많고 좀 더 열광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여성 시청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인식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관계 판타지’가 여전히 드라마 제작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는 것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판타지 장르의 약진이다. 위 연구에서 드라마 장르 구분에 대한 시청자의 응답 중 판타지물은 멜로/로맨틱 코메디, 스릴러/미스터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더구나 2위인 스릴러/미스터리와 거의 동률을 형성할 정도였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액션, 공포, 코미디 순이었다. 이처럼 TV 드라마에서 액션이나 공포, 코미디 같은 전통 적으로 익숙한 장르보다 판타지물의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은, 영화보다 조금 더 보수적으로 흘러가는 TV 드라마의 구조상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렇다면 동시대 영화에서 판타지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2000년대 초반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 류의 하이 판타지 영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 즉 이차 세계의 내적 믿음”[각주:2]을 중요시하며 영웅서사시, 기사 모험담, 고딕소설, 전설 등의 모험, 초자연적인 것, 신화적인 요소를 통해 나름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서 보여준다. 또한 SF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슈퍼히어로물 등 비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도 판타지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판타지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하이 판타지와 판타지 요소를 갖춘 영화를 종합해서 ‘판타지물’로 부를 수 있겠다. 2000년에서 2016년까지 전 세계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를 대상으로 한 박스오피스 10위권 영화들을 살펴보면,[각주:3] 007 시리즈를 비롯한 몇몇 액션 스릴러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영화가 <해리 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아바타>, < 배트맨> 시리즈,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 비현실 기반의 판타지물이거나 애니메이션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판타지가 영화계를 점령한 것이다. 


세계 영화계 특히 할리우드에서 이런 비현실 기반의 판타지가 대세로 등극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탈정치화다. ‘역사의 종언’ 선언 이후 등장한 탈정치화된 흐름에서 영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말처럼 “후기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 문화상품”이 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개념을 탄생시키며 탈정치화의 선봉에 섰다. 또 하나는, 문화적 경향의 포스트모던한 전환이다. 이미 발표된 코믹스 작품을 실사화해 선보이는 슈퍼히어로물, 그리고 컴퓨터 특수효과로 환상성을 극대화한 <반지의 제왕> 류의 판타지물은 ‘혼종성’ 및 ‘스펙터클에 대한 강조’라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던한 경향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최근 <부산행>처럼 판타지 요소를 도입한 재난영화가 천만 넘는 관객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러나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14편 중 <부산행>과 <괴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역사물이거나 범죄액션, 재난, 휴먼드라마 등 현실 기반 영화들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상업 영화의 보편이자 모범으로 상정되는 한국 영화계에서 판타지물의 제작은 막대한 제작비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판타지물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영상문화계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작품에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한 곳은 드라마 현장이었다.


지상파, 케이블 가릴것 없이 2010년 이후 드라마에 눈에 띄게 도입된 판타지는 최근까지 주로 장르 혼합적인 특성을 띠며 나타났다. ‘타임슬립’이나 ‘ 초자연적 능력’ 같은 판타지 요소를 도입해 의학, 수사, 법정, 로맨스 등의 장르와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판타지 로맨스물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방영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시크릿 가든>은 싸가지 없는 재벌 남자 주인공과 씩씩한 평범녀가 얽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남녀의 영혼이 뒤바뀌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시크릿 가든>의 성공을 필두로 수많은 판타지 멜로물이 뒤를 이었다. 시간여행을 하게 된 조선시대 선비와 무명여배우의 사랑을 그린 <인현왕후의 남자>(2012), 21세기로 온 왕세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옥탑방 왕세자>(2012), 조선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 의사가 펼치는 모험을 그린 <닥터진>(2012), 고려시대로 타임슬립한 여의사와 무사의 사랑 이야기인 <신의>(2012),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청년과 변호사의 법정물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찾아와 장래와 사랑에 대해 조언해주는 <미래의 선택>(2013), 반인반수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구가의 서>(2013), 외계인과 여배우의 사랑 이야기인 <별에서 온 그대>(2013), 귀신 보는 능력을 가진 여자와 사장의 호러 연애물 <주군의 태양>(2013), 조선시대에 떨어진 고3 여학생과 조선의 왕 이도의 로맨스를 그린 웹드라마 <퐁당퐁당LOVE>(2015), 뱀파이어 선비와 남장 여자의 이야기인 <밤을 걷는 선비>(2015), 처녀귀신이 빙의한 소심한 여자와 셰프의 사랑을 다룬 <오 나의 귀신님>(2015), 평범한 여자가 우연히 천 년전 고려로 타임 슬립한 뒤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2016), 인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푸른 바다의 전설>(2016), 천년을 넘게 살아 온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의 이야기인 <도깨비>(2016), 괴력을 가진 여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정의를 실현하고 게임회사 CEO와의 사랑에도 성공하는 <힘쎈 여자 도봉순>(2017)까지 로맨스에 판타지라는 요소를 덧붙인 드라마의 리스트는 길게 이어진다.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이나 <신의 선물, 14일>(2014), <시그널 >(2016), <터널>(2017)처럼 로맨스보다는 미스터리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판 타지 작품들도 있었지만, 2010년 이후 한국 드라마의 제작 양상을 돌아볼 때 판타지의 좋은 짝은 단연 로맨스 멜로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판타지’가 ‘관계 판타지’를 만났을 때


그렇다면 TV 드라마에서 판타지는 왜 이다지도 로맨스를 선호하는가? 먼저, 산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예산문제를 들 수 있다. 미드 <왕좌의 게임>이나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본격 ‘하이 판타지’가 아니라 TV 드라마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적은 예산의 판타지로는 로맨스 판타지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로맨스만큼 판타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서사가 없다는 것이다. 연애소설과 TV 드라마 속 로맨스가 여성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관계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은 익숙하다. 즉 로맨스가 일종의 ‘관계 판타지’라는 말인데, 이 판타지를 구성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가능하다” 등 ‘낭만적 사랑의 신화’ 다. 


또 한편으로 연애소설과 TV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로맨스 서사는 바로 ‘계급차 로맨스’다. 이른바, 재벌 남자 주인공과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계급 차이에서 비롯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예컨대, 시어머니의 물 끼얹기와 돈 봉투 들이밀기 등) 사랑의 완성, 그러니까 대개는 결혼이라는 골대로 입성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낭만적 사랑의 신화’와 ‘계급 로맨스’는 판타지를 만나 어떤 식으로 변모했을까?


초자연적 능력자가 등장하는 역대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단연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라 할 수 있다. 이들 드라마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초인적 캐릭터’ 즉 외계인과 도깨비가 등장한다. 2013년 12월에 방영을 시작한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은 타고 온 UFO가 조선시대에 불시착하는 바람에 지구에서 400여 년을 살아온 외계인이다. 그는 매의 시력과 늑대의 청력,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능력을 지녔으며,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의 초인적 캐릭터다. 그런 그가 톱스타 천송이(전지현 분)를 만나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다. 


드라마 <도깨비>에도 역시 범상치 않은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고려의 무신인 김신(공유 분)은 역적으로 몰려 죽어야 할 운명이었으나 하늘의 계획으로 인해 몸에 칼이 꽂힌 채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가 되어 900여 년을 살아온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불멸 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 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서사의 주를 이룬다.


이들 외계인과 도깨비는 가히 완벽한 스펙을 보여준다. 훌륭한 외모는 옵션이고 몇백년동안 쌓은 어마어마한 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고급스런 취향, 비밀스러운 면모, 압도적인 물리력,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까지. 인간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그야말로 꿈의 스펙을 지닌 이상의 남성이다. 한편, 이들의 상대역은 어떠한가? <별에서 온 그대>의 여자 주인공은 남 눈치 보지않고 성질대로 사는 대한민국의 톱스타다. 외계인도 놀랄 정도로 뇌가 순수하며 가끔 개념을 상실한 것처럼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도깨비>의 여자 주인공은 어릴 적 엄마를 잃고 이모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는 가여운 소녀다. 거기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타고난 덕분에 학교에서는 왕따까지 당한다. 그러나 신기할 정도의 낙천적 성격 때문에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처럼 완벽한 ‘비인간적’ 존재인 남자 주인공과 당돌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여자 주인공의 조합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비인간적일 만큼’ 완벽한 스펙을 갖춘 실장님 류의 재벌 남자와 씩씩하고 순수한 캔디 류의 서민 여자—캔디 류의 여주인공은 일견 평범해 보일 수 있으나 알고 보면 위의 판타지 속 여주인공들처럼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가사의할 만큼 꿋꿋하거나, 재벌 남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장밋빛 미래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점에서 말이다—의 조합, 바로 그 계급차 로맨스의 전형적인 커플 구성이다. 


남자 주인공이 보유한 초인적 능력은 로맨스를 견인하는 매력의 자산인 동시에 사랑의 장애물이기도 하다. 일례로,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초인이기 때문에) 갖는 태생적 운명은 계급차 로맨스에서 연인의 사랑을 가로막는 집안의 반대 혹은 자본주의적 사회의 장애물 역할을 대신한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은 우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고 <도깨비>의 김신은 그의 능력의 원천이자 저주인 가슴에 꽂힌 검이 뽑혀야만 그가 900년 동안 원하던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이들의 상황은 연인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동시에 이들의 사랑을 더욱 비극적으로 불타오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초인성’ 혹은 그에 따른 운명이라는 코드가 계급성을 대신할 뿐 초인이 등장하는 판타지 로맨스와 재벌이 등장하는 계급차 로맨스의 서사적 문법은 동일하다.


반대로 초인적 능력을 보유한 쪽이 여성인 경우가 있다. <별에서 온 그대> 의 작가의 후속작인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인어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어인 심청(전지현 분)은 텔레파시를 할 수 있고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회복력과 괴력 등 육체적 능력도 탁월하다. 심지어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말 그대로 ‘진주’가 된다.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전개는 <별에서 온 그대>의 구조와 비슷하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면서 전생의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의 사연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로만 보자면 심청은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보다 퇴보했다. 물론 때로는 전형적인 계급차 로맨스 클리셰인 ‘남자 집안으로부터 물세례 받기’를 비꼬는 듯한 “저 물벼락 맞으면 안 돼요”(물을 맞으면 지느러미가 노출된다) 같은 대사로 재기발랄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어인 자신은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다는 수동성, 자신이 흘린 눈물이 진주라는걸 알게되자 이것을 모아 남자에게 다 갖다 주겠다는 지고지순함은, 지난 몇 십년간 조금씩이나마 진보해 온 여성 캐릭터를 순식간에 <청춘의 덫>(1999)[각주:4] 시절로 회귀시켜 버린다. 상대로 등장하는 허준재(이민호 분)가 심청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도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라기 보다는 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돌발적으로 드러나는 심청의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허준재는 결국 세상살이에 어둡고 어리숙한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슈퍼 히어로급의 괴력을 소유한 여주인공이 나오는 <힘쎈 여자 도봉순 >의 경우를 보자. 여주인공인 도봉순(박보영 분)은 단순히 힘이 좀 센 정도가 아니라 자동차를 가뿐히 던져버리고 질주하는 버스를 맨손으로 세울 만큼 어마어마한 괴력을 지닌 여자로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인 안민혁(박형식 분)이 맨 처음 도봉순과 얽히게 되는 시점은 이런 괴력을 발견하고 개인 경호원으로 고용하면서부터지만 이 괴력이 그가 사랑에 빠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괴력과 상반되는 지켜주고 싶은 여자로서의 귀엽고 자그마한 외형, 그리고 애교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도봉순의 애교가 이어질 때마다 “너 어떡하지?”라는 대사와 함께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는 안민혁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비춰진다). 게다가, 여주인공의 괴력은 관계에 갈등을 몰고 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도봉순이 자신의 힘을 선용하기로 마음먹고 납치범과의 일대일 대결에 나서려고 하자 안민혁은 “나는 너한테 뭐냐?”며 자신이 보호자로 나설 수 없는 입장을 괴로워한다. 


이렇듯 남성 주인공의 초인적 능력이 모티프가 되는 드라마에서 그가 소유한 초인적 능력이 재력이자 매력이며 여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여성의 초인적 능력은 여성적 매력에 양념처럼 곁들여진 수준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애정관계에 있어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다. 정리하자면, 초인적 능력이 낭만적 사 랑의 자원이 되는 것은 아직도 ‘남성 한정’에 머무르고 있으며, 여성이 초인적 능력을 지닌 드라마에서조차 남녀 역할의 전복적 재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초인남이 기존의 ‘재벌 2세 실장님’ 을 대신해 계급차 로맨스의 전통적인 남자 주인공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면, 과거 그 수많은 금수저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사회 드라마에서 악인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멤버, 아들의 전쟁>(2015)의 남규만(남궁민 분), <피고인>(2017)의 차민호(엄기준 분), <귓속말>(2017)의 강정일(권율 분), <맨투맨 >(2017)의 모승재(연정훈 분)는 드라마 속 대표적인 금수저 악역들이다. 


금수저들이 로맨스에서 사회물로 장르를 옮겨간 것은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능력이 부모의 상속을 넘어설 수 없게 된 한국 사회에서 금수저들의 일탈과 패륜적 행위는 별 어려움없이 그들을 공공의 적 자리에 올려놓았다. 또 하나, 그 어느때보다 결혼에 의한 계급간 교차가 어려워진 시대적 분위기가 있다. 서민 출신의 평범한 여자가 재벌 2세를 만나 남자 집안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을 쟁취하는 해피엔딩의 서사는 그 자체로 너무나 ‘판타지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애와 결혼 등 결속을 공고히 하는 모든 행위는 아비튀스를 공유한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시어머니가 굳이 돈봉투와 물세례를 준비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초인남 판타지는 수저 계급론이 출현시킨 사회적 부산물이라 할만하다. 대체 풍부한 재력에 평생 늙지도 않는데다 사회적 계층 구분에서 자유롭기까지 한 ‘가족 없 는 초인남’ 만큼 매력적인 대상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3. 타임슬립 모티프가 불러내는 해원(解)의 념


2012년은 타임슬립[각주:5]5 로맨스 드라마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해였다. < 인현왕후의 남자> <옥탑방 왕세자> <닥터진> <신의>가 모두 같은 해에 전파를 탔으며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타임슬립 모티프의 흥행력을 확신한 드라마계는 그 후로도 <미래의 선택>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퐁당퐁당LOVE> <사임당, 빛의 일기> <내일 그대와> <시카고 타자기> 등을 쏟아냈다. 이중 비교적 최근 드라마인 <사임당, 빛의 일기> <내일 그대와> <시카고 타자기> 등이 시청률 부진을 보이기는 했지만, 타임슬립은 여전히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프로 소구되고 있다. 


타임슬립 모티프가 로맨스와 만났을 때 갖는 장점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대적 차이에서 비롯된 이질성에 있다. 이 이질성은 남녀의 애정관계에 있어서 호감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사랑하는 남녀가 시간적 차이에 의해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점, 언젠가는 자신의 시간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발생되는 애절함의 극대화가 로맨스를 견인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시간대가 아닌 다른 시간대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타임슬립 모티프의 가장 강력한 진동은 무엇보다 지금의 현실을 반전시 키고자 하는 욕망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타임슬립 모티프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은 정작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었다.


2016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드라마 <시그널>은 무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신하고 이를 통해 미제 사건을 풀어낸다는, 타임슬립 모티프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그널>의 타임슬립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소통의 통로를 열고, 나아가 억울한 희생을 위로한다는 주술의 원래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차용한다.[각주:6] 성수대교 붕괴 사건, 대도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등 동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 속 미제 사건들은, 과거와 현재의 소통으로 이뤄진 무전 교신을 통해 그 가려진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돈 있고 빽 있으면 죄를 지어도 벌을 안 받는다” “누군가 포기하기 때문에 미제 사건이 만들어진다”는 드라마 속 형사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무전을 촉발해 서로 다른 두 시간대를 연결하게 만드는 주된 동력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다. 또한 여기에 주인공 형사들의 개인사에 얽힌 강력한 감정적 요소가 투입된다. 수사기관의 포기 속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년을 가려졌던 미제 사건의 실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무전이라는 장치, 그리고 거기에 기댄 주인공 형사들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미제 사건이 풀려 나가는 와중에 드러나는 것은 오랜 세월 국가기관이 헤아려주지 못한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의 고통이다. 결국 이 피해자들의 고통과 거기서 비롯된 해원(解)에 대한 염원이야말로 ‘과거로부터 온 무전’이라는 타임슬립 모티프를 작동시킨 원천적 이유라는 사실이 마지막에 드러난다. 이렇듯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갖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해원의 도구로 쓰임으로써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각주:7]


비록 <시그널>이 직접적으로 세월호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진 않지만, 미제 사건을 다루는 이 드라마가 세월호의 영향 아래 있는 ‘포스트 4・16 드라마’[각주:8]라는 해석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 국면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참사는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들었고 <시그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그널> 속 미제 사건은 국가기관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에 발생하며 이는 곧 남은 이들의 치유되지 않는 아픔으로 귀결된다. 


세월호는 촛불 혁명의 불씨로 인해 다행히 최근 배의 인양과 함께 미수습자 수색이 진행 중이지만, 지난 3년간 일종의 미제 사건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지워져 가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그 어떤 구조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정부 당국과 이와는 상반되게 적극적으로 구조에 임했던 민간 낚싯배들의 모습은 국가적 보호 부재 속에서 사적 자원에 의지해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인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각인시켰다. 당시의 충격은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트라우마 를 남겼고 결국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점화제 역할을 해냈다. <시그널>이 방영되던 당시, 드라마 속에서 미제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는 형사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대리만족의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사회의 현실을 더욱 씁쓸하게 반추하도록 만들었다.



4. 나가며



모든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판타지다. 허구적 서사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환상은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이야기가 종료되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서사는 갈등 상황을 거쳐 적절한 엔딩으로 종료되지만, 삶은 종료 없이 계속 흘러가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 서사적 종결이 주는 완벽한 마감은 결코 존재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인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근대서사의 세계에서 정통의 자리는 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이 독점해왔다. 장르로서의 판타지는 리얼리즘 작품에 비해 줄곧 저급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세계 영화계의 박스오피스를 휩쓴 대부분의 영화가 하이 판타지, SF, 애니메이션, 슈퍼히어로물 등 판타지물로 채워지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장르 위계의 역전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대로 20세기 말 문화의 영역에서 나타난 ‘탈정치성’과 ‘포스트모던한 전환’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성이 이성의 배면(背面)이듯 환상이 현실의 배면이라고 했을 때, 판타지는 어쩌면 일종의 시대정신인지도 모른다. 21세기의 문을 열어젖힌 9・11 테러를 시작으로 테러가 일상이 된 시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격화시킨 경제적 양극화의 시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라는 일상화된 생태적 위기에 노출된 시대.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과학기술의 결실 앞에서 존재에 대한 모호한 위협을 느끼는 시대. 판타지는 이 시대의 묵시록적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최적화된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판타지는 할리우드를 거쳐 이제 우리의 안방으로 쇄도하고 있다.


안방의 영원한 강자인 로맨스와 결합한 판타지는 ‘로맨스 판타지’라는 새로운 혼합 장르를 개척했지만, ‘초인’과 ‘재벌 2세’를 바꿔치기 했을 뿐 기존의 한국 로맨스 드라마 서사를 동어반복함으로써 불평등한 젠더관계를 고수하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낸다. 한편, 스릴러 드라마와 결합한 ‘타임슬립 판타지’는 가려졌던 진실을 밝혀내는 중요한 장치로 쓰임으로써 현실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서사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런데 현실 반전이 비단 서사의 욕망뿐인 걸까? 그보다는 지금 한국 사회의 사회적 무의식, 즉 시대정신이 바로 그 ‘ 현실 반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촛불 현장과 대선 과정에서 가장 크게 들려온 구호가 ‘적폐 청산’이었음을 떠올려보라). 이렇듯 최근 한국 드라마 속의 판타지는 TV 드라마 장르 확장의 주역이자, 현실을 재강화하면서 동시에 현실 반전의 욕망을 드러내는 등 모순적으로 작동함으로써 현실의 배면으로서의 스스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1. 「TV 판타지 드라마의 장르혼합 양상 연구: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주군의 태양>을 중심으로」, 이여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4. [본문으로]
  2. J.R.R. Tolkien, On Fairy-Stori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47), 68. [본문으로]
  3. http://www.boxofficemojo.com 참조. [본문으로]
  4. <청춘의 덫>은 SBS에서 1999년 1월 27일부터 4월 15일까지 방영한 드라마로 1978년에 MBC에서 방 한 동명의 주말 연속극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한 남성이 신분 상승을 위해 헌신적으로 자신을 뒷바라지한 애인을 버리자 그 애인이 복수한다는 이야기로, 시청률 53.1퍼센트를 기록했다. 역대 한국 드라마를 통틀어 17위의 시청률을 기록한 김수현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본문으로]
  5. 타임슬립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과거 혹은 미래에 떨어지는 사건을 가리키는 말로, 의도를 갖고 행해진 시간 여행과는 엄밀한 의미에서 구분되지만 이 글에서는 시간여행의 모티프를 지닌 작품들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타임슬립물’이라 부르기로 한다. [본문으로]
  6. <시그널> 서사의 주술적 장치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이지행, 「연쇄하는 재난의 세계를 건너기: 묵시록적 포스트모던 재현의 양상」, 『대중서사연구』 23권 1호, 2017 참조. [본문으로]
  7. <시그널>뿐 아니라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나 <신의 선물, 14일>의 주인공들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반복적으로 과거에 뛰어든다. <터널>의 주인공 형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30년 후의 미래에 떨어지게 되는데, 결국 그는 과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연쇄살인의 범인과 미래에서 맞닥 뜨리게 된다. [본문으로]
  8. 유선희, 구둘래, 「드라마・영화 곳곳에 새긴 세월호」, 『한겨레』, 2017. 4. 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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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인간에 대한 연민이 지켜낸 품위  (0) 2016.03.12
Posted by 미와카주

8, 90년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가 IMF로 버블이 꺼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부모는 잠실의 아파트에서 밀려나 옆 동네 월세 빌라에 살면서도 부동산 버블 시대에 대한 향수와 인생 역전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를 지켜보는 감독의 카메라는 그들의 부동산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뒤쫓는다.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건설과 부동산 열기는 그대로 베이비 붐 세대의 욕망이 되었고, 베이비 붐 세대인 감독의 부모 역시 화학 공장에서 일하다 집 장사에 눈을 떠 시대와 함께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건설과 개발, ‘하면 된다’로 요약되는 시대는 IMF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시대에 자리를 내줬고, 그렇게 바뀐 시대의 수레바퀴 아래서 감독의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개미 민중들이 깔려 죽었다. 이 영화는 게임에서 언제나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바로 그 ‘개미’들에 대한 이야기다. 

<버블 패밀리>[각주:1]의 감독은 부동산 호황기에 ‘집 장사’를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선 부모 아래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외동딸이다. 그 딸이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씁쓸한 경제적 몰락 위에 서 있는 부모님의 오늘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여러 갈래 안에서도 가족 다큐는 한국적 가족 관계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상당히 껄끄러운 작업이다. 또한 가족의 내밀한 사연을 익명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기에 복잡한 각오를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 다큐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이들은 부모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촬영 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끝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미움이든 포용이든 말이다. 그래야만 갈등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객관적인 마음의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조금 이상하다. 부모의 가장 추레하고 비참한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모를 의식하고 마음 쓰는 감독이 보인다. 허물어져 가는 살림살이에도 끝까지 부동산 한 방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를, 때론 어이없는 헛웃음으로 대하다가도 곧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기도 한다. 평가하고 해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가 결국은 그 과정에서 부모의 삶의 궤적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경우라고 해야 할까. 영화의 마지막, 엄마가 빚까지 져가며 딸의 이름으로 사둔 임야를 바라보며 감독은 중얼거린다. “이 땅 때문에 빚을 져야했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만 같다.” 감독 자신 역시 부모로부터 환경과 습성과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을 그래서 스스로도 자기 영화의 대상인 부모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씁쓸하게 인정하는 창작자의 태도에 뭔가 신뢰가 갔다면 이상한 얘기인 걸까. 

이 영화는 감독의 가족사를 통해 근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 개입해 들어온 자본주의의 문제 즉 지정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한국의 중산층이 87년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에서부터 90년대 소비 자유주의시대, 97년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어떻게 비상하다 추락했는지를, 우리는 부동산의 몰락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게임에서 정보와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미들은 언제라도 치명타를 맞고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영화는 증언한다. 부동산 몰락이 베이비 붐 세대 생애사의 한 챕터였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생애사에는 또 다른 형태의 몰락이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은 2017.06.15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다큐멘터리 초이스에 실려있습니다.

  1. 감독 마민지, 2017 [본문으로]
Posted by 미와카주


<방탄소년단 팬덤, 세계 주류문화 질서를 뒤흔들다>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의 어마어마한 해외 인기를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곧잘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춤이 멋있어서, 얼굴이 잘 생겨서, 또는 SNS 시대의 수혜를 톡톡히 받아서라고. 


물론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방탄소년단에게 관심을 가지는 동기가 될 순 있지만, 서구 미디어가 한 목소리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헌신적인 팬덤”이라 평가하는 열정적인 방탄 팬덤의 행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서구에서 방탄이 이뤄낸 이제까지의 성공, 그리고 앞으로의 성공까지도 ‘전적으로 팬들 손에 달려있다’고 보는 게 현재 서구 미디어가 공유하는 시각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의 보이 밴드, 그것도 거의 모든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가수의 세계적인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앨범과 음원을 몇개씩 반복해 사들이고, 하루종일 음원을 스트리밍하며, 온갖 시상식에 엄청난 투표 화력을 쏟아붓는건 물론, 미디어와 라디오에 조직적으로 홍보를 하는 방탄 팬덤. 특히 해외 팬덤이 보여주는 열광과 헌신 대신,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일화를 먼저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이 일화의 트위터 원문은 @AskAKorean)



1997년 나는 한국에서 LA로 이민을 왔다. 


미국에 오기 전 영어 코스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ESL 수업을 듣지 않고 곧바로 10학년 정규수업에 편입하게 됐다. 그날은 생물수업을 두 번째로 듣는 날이었다. 수업시간에 퀴즈를 봤는데 생물 담당인 갤러허 선생님은 이제 막 전학을 왔으니 퀴즈는 안 봐도 된다고 했지만 어쨌든 시험지는 건네주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그 시험지를 마치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한다. 


‘광합성’에 대한 문제였다. 식물의 잎이 그려진 도표가 있었고, 그 잎으로 어떤 종류의 가스가 들어오고 무엇을 뿜어내는지를 쓰는 문제였다. 약 5분 정도 그 문제지를 쳐다보는 동안, 나는 좌절감으로 인해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광합성에 대한건 한국에서 7학년(주: 한국의 중학교 1학년)때 이미 배운 거였다. 나는 모든 답을 알고 있었다. 단, 그게 영어가 아니었을 뿐. 


이 시험이야말로 내가 새로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나는 모든 이들이 나같은 기분을 한번쯤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갑자기 멍청이가 되는 것 같은 기분.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약 5분후, 나는 답을 한국어로 적기 시작했다. 갤러허 선생님은 시험을 안 봐도 괜찮다 했지만 어쨌든 빈 답안지를 내긴 싫었다. 내가 갑자기 멍청이로 변한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이틀 후, 갤러허 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최고점은 만점을 받은 TK란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놀라서 내 시험지를 쳐다봤다. 한국어로 쓴 답안에 모두 채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어눌한 영어로) 선생님께 어떻게 채점을 매셨냐고 여쭤봤다. 그분은 내 답안지를 한국계 미국인인 수학 선생님께 보여 주였다고 했다. 그 수학 선생님도 한국어를 썩 잘하는 건 아니라서 한국어 사전까지 동원해서 내 답안지 채점하는걸 도와줬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이때 일을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자신의 학생을 위해 갤러허 선생님이 한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그 시험이 내 성적에 포함되지 않을거라 말했으므로, 그녀는 내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시험지를 채점한 바로 그 순간이 내 미국 이민생활의 행로를 바꿔놓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게 아니라는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되는 것,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영어를 배웠다.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내 졸업 연설은 마치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한 장면 같았다(주: 왕따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코미디영화). 횡설수설에 심한 외국인 액센트까지, 끔찍했다. 동급생들 표정도 황당해보였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단상에서 내려오라며 야유를 퍼붓지는 않았다. 


졸업 후 나는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로스쿨에 들어갔다. 지금 나는 변호사인 동시에 세상과 글로 소통하는 작가이다. 내가 영어로 쓴 글을 학생들에게 샘플로 보여준다는 작문 교수들의 말을 전해들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존 켈리(주: 백악관 비서실장)같은 멍청이가 비영어권 이민자는 미국에 동화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면, 나는 항상 갤러허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미국에는 아직 존 켈리 같은 사람보다는 갤러허 선생님 같은 사람이 더 많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제발 기억하길 바란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걸.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해외로부터 새롭게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새롭게 이 땅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를 바란다. 


바로 당신이, 누군가의 갤러허 선생님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주말 아침, 아직 잠에서 덜 깬 채로 트위터에서 이 글을 읽다가 나는 말 그대로 소리내어 울었다. 내용 자체가 인도주의적이기도 했지만, 열 살 무렵 내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2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막 마친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에 왔다. 지금이야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지만, 삼십여 년 전 그때 알파벳은 중학교나 가서야 배우는 거였다.


내가 살던 어배나(Urbana)엔 큰 대학이 있어서 아버지처럼 교환교수나 연구원으로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 동네에서는 그 자녀들과 한국어로 맘껏 뛰어 놀았지만, 학교에서는 달랐다. 한마디도 못하는 멍청이였다 나는.  


급식 시간이 내겐 악몽이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걸 알고 나를 괴롭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애들이 더 잔인하다. 디저트로 간만에 뭔가 맛있는게 나올때면, “너 이거 먹을거야? 안 먹을거지? 안 좋아하지?” 내가 틀린 대답을 할때까지 긍정문과 부정문을 섞어 다다다다 물어보는 애들한테 여러 번 후식을 뺏기곤 했다. 알겠지만 영어는 한국어와 긍정/부정 체계가 달라서 “안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걸 좋아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해선 안된다. 그럼 디저트를 뺏긴다.        


급식 시간 내내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간혹 다가오는 애들은 그렇게 놀리며 내 디저트를 뺏어가는 애들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내게 같은 반 애들 두엇이 다가왔다.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하고 있는데, 생글거리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예쁜 빨간색 하트 스티커였다. 설마 이걸 내게 주는건가? 하는데 손짓발짓 끝에 알아들은 말이 스티커를 살 생각 없냐는 거였다. 한참 고민 끝에 그래도 혹시나 이게 일종의 우정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스티커를 샀다. 


문제는 몇 시간 뒤 일어났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숙제에 잘 했다는 표시로 붙여주는 스티커가 없어졌다는 거였다. 바로 내가 산 그 스티커였다. 스티커 종이에서 막 하나를 떼어 노트에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눈길이 내게 쏠리고 숨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두가 내 손에 든 스티커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프도록 알 수 있었다. 나는 온 영혼을 다해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그 스티커를 사게 되었는지 내 짝꿍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보던 흑인 짝꿍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담임선생님에게로 갔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느낌상)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한 말은 잘 알겠어. 하지만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자”. 


아, 이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 아니면 귀찮아서든 뭐든 최소한 이 오명에서 나를 건져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 나는 그렇게 영어도 못하는 바보인 동시에 도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갤러허 선생님같은 분이 없었다. 그저 운이 없었다 해두자. 


길든 짧든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타언어권에서 순식간에 멍청이가 되는 느낌을 한번쯤은 맛봤을 것이다. 좀 더 머리가 큰 뒤 대학원 때문에 다시 미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토론 참여가 필수인 비평 수업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데만 시간을 다 보냈다. 말을 하면서 정리가 된다는 것은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 내가 몇시간 동안 만들어놓은 문장을 겨우 뱉으면 수업이 끝났다. 그동안 네이티브들은 별 통찰력도 없어보이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즐겁게 수업을 장악했다. ‘한국말로 했으면 니들은 다 죽었어’는 그저 마음의 소리일뿐, 언어의 장벽 앞에서 나의 지성은 무용했다. 1세계의 벽 앞에 선 제 3세계 인구의 서글픔이었다. 


방탄소년단 해외 팬덤을 관찰하면서 내가 참 흥미롭다 느꼈던 것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이런 좌절감이 역전돼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네이버 V앱의 <달려라 방탄> 같은 몇몇 컨텐트를 제외하고, 방탄의 대부분 컨텐트는 영어 자막이 없는 채로 나온다. 물론 채 얼마 되지 않아 자발적인 팬 번역가들 일명 ‘번역계’가 자막본을 내놓지만, 그 시간동안 타들어가는 팬들의 속마음은 이런 짤을 유행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방탄 멤버가 V앱에서 라이브 방송이라도 할라치면, 장장 1시간 가까이를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버텨야한다- 물론 그 순간에도 수억개의 하트와 수십만개의 댓글을 날리는걸 잊지 않는다. 라이브 방송처럼 이렇게 긴 컨텐트의 경우, 제대로 된 번역본이 뜰 때까지 이틀 내지 삼일이 걸릴 때도 있다. 


그뿐인가. 앨범이나 콘서트 소식 등 중요한 공지를 대부분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하는 기획사 때문에, ‘twelve hit phobia’ 즉 ‘열두시 땡 공포증’이라는 말이 외국 팬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돌았다. 한국 팬들이야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편안히 공지를 받을 수 있지만, 바쁜 아침 시간이나 한참 회사나 학교에서 일과 중인 외국 팬들에게, 이 한국시간으로 자정은 너무나 가혹한 타임라인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말로 노래하는 가수의 팬이 된다는 게 이런 거란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늘도 수백만의 외국 팬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한국 시간(KST)으로 설정해 놓는걸 잊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방탄의 해외 팬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기다림과 답답함을 벗 삼은 채 일상의 바이오리듬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언어와 시차의 위계가 역전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디 너희들이 당하니까 어떠냐? 우리 비영어권 출신의 괴로움을 이제 알겠지?“ 같은 고소한 마음이 내심 안드는건 아니지만, 나는 이 현상 이면에 훨씬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방탄소년단의 팬인 라프란즈 데이비스(@RafranzDavis)는 <MEDIUM>에 기고한 <한 케이팝 그룹이 어떻게 나를 장벽 너머로 이끌었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직업 때문에 전 세계의 교육자들과 교류했지만 한번도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때론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도 가르쳐봤지만,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 적이 없었다. 결국엔 그들이 영어를 배워 언젠가 나와 영어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BTS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장벽과 편견이 존재한다. 그런 장벽을 만날 때면, 마치 내게 있어 BTS 같은 존재가 나타나, 여러분이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1세계 시민으로서의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 없는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 됐을 때 겪는 이런 역지사지의 순간들은, 당혹감과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타 문화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준다. 


게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탄 팬덤에 깊숙이 들어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 노래 가사를 들으며 울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탄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오열하기 시작하는 외국 팬들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세계 평화는 정치가들 손에 달려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방탄의 팬 번역가들이 아무리 성실히 그리고 재빨리 번역을 한다 해도,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 답답함 그리고 한국어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의 공백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례로, 해외 팬들은 초창기 방탄의 스타일링이나 발언에서 흑인에 대한 미묘한 인종주의적 선입견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표시했다(이는 비단 방탄뿐 아니라 케이팝 전체에서 곧잘 발견되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멤버의 진솔하고도 구체적인 사과가 나오자, 서양권 문화의 특성상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고쳐나가려는 태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팬덤은 더욱 강력하게 결속되었다.  


문화와 문화가 감정적으로 서로 이어질 때의 감동. 게다가 세계 질서 아래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고 비주류의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주류 문화권 팬들의 태도에서 나는, 희망없는 세계에 불어오는 시원한 찬바람 한줄기를 느꼈다. 전지구적 주류문화 질서 아래서 앞으로도 나는 종종 ‘멍청이가 돼버린 기분’에 사로잡히겠지만, 최소한 세계의 한 켠에서는 문화 교차를 통한 ‘역지사지’, 그로 인한 타인에 대한 더 넓은 이해가 실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말이다.    


시작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였지만, 점점 서로의 문화와 언어에 새겨진 ‘차이’와 ‘같음’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도록 계기가 되어준 방탄소년단에 감사한다. 더불어, 곧 발매될 새 앨범 Love Yourself: TEAR의 세계적 성공을 전 세계 아미와 함께 기원한다. 


Teamwork Makes the Dream Work!   




PS: 이번 에피소드는 팬 아닌 일반인들이 좀 더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오마이뉴스 블로그 뉴스에 올렸습니다. 아래 위젯은 오마이뉴스에 연동되는 건데, 원고료는 안주셔도 상관없지만 추천을 많이 눌러주시면 아무래도 일반인 분들께 좀 더 노출이 되지 않을까요. 이게 다 방탄 홍보다 생각하시고^^






Posted by 미와카주


<번 더 스테이지: 아름다움은 언제나 과정에 숨어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몇 시간 후에 공개될 <번 더 스테이지>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번 더 스테이지>는 지난 2017년의 방탄 Wings 월드 투어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유튜브 레드를 통해 지난 4월부터 매주 1화씩 공개돼 왔다. 드디어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다).



다큐를 시작하는 1화에서 슈가와 RM은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수많은 콘텐츠와 영상을 통해 우리 모습을 팬들에게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도 실은 엄청 가리고 약점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좀 더 날 것의 우리 무대 뒤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다’라는걸 보여주고 싶어요”



날 것의 모습이라. 



V앱과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제공되는 수많은, 그야말로 다 보는게 불가능할 정도의 방탄 관련 콘텐츠들. 그걸 뛰어넘는 차별화된 솔직함을 보여주겠다는 얘기인가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리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영화 전공자로서 촬영과 편집의 원리가 얼마나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가동되는지 십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솔직함을 약점으로 인지하는 일부 팬들의 반발을 회사가 결코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남겨둔 지금, 고백하자면 나는 울었다. 


다큐가 너무 슬퍼서도, 격한 팬심의 발로도 아니고, 그저 매번 에피소드가 시작되기만 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삐져나왔다. 그리 오래 된 옛일도 아닌 불과 작년 투어의 무대 비하인드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울다니. 팬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난 어딘가 고장난걸까. 위기의 중년이 겪는다는 ‘고장난 수도꼭지 신드롬’도 아니고, 도대체 이 다큐의 뭐가 어떻길래 나는 울기씩이나 했을까. 다큐의 내용을 살펴보자. 




<번 더 스테이지>는 월드 투어 무대와 무대 뒤의 모습, 그리고 투어 사이사이 멤버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을 보여준다. 투어 도중 이들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싸가지고 온 장비를 호텔방에 풀어놓고 음악 작업을 하거나, 투어가 열리는 도시의 미술관이나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고, 유명하다는 핫도그를 사먹고, 바다에 가서 잠깐 난 짬을 만끽한다 (무대 동선에 대한 진과 뷔의 언쟁이 잠시 나오지만, 언제나 그랬듯 멤버 모두가 모여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으며 해결하는 전형적인 ‘방탄식 갈등 해결법’을 보여준다).  

 

다큐 에피소드 전반부마다 무대에서 공연 전 리허설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시퀀스가 있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리허설을 하는 멤버들은, 때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진지하게 디렉터와 무대 논의를 하고, 때론 서로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면서 무대와 무대 사이의 리허설 타임을 보낸다.  



그중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사이사이 멤버들이 빈 객석을 바라보는 어떤 찰나의 표정들이었다.     






이제 갓 이십대 초중반에 들어선 멤버들은, 자신들의 세계적 명성에 막 불붙은 시기에 시작된 투어의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무대가 주는 압박감과 두려움, 팬들에 대한 감사... 거기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을거다. 







멤버들의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텅 빈 객석 앞에 서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느닷없이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혔다. 


그건 마치, 이 모든 열광이 가라앉고 조명이 꺼졌을 때, 그러니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방탄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느낄 감정을 대리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열광과 갈채, 지난한 연습의 과정, 압박감과 성취감. 이 모든 걸 뒤돌아보는 방탄의 뒷모습을 미리 시간을 거슬러 몇십년뒤의 미래에서 이들과 함께 보고 있는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인간은 유한하다. 백년도 못되는 삶을 살다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이 유한함이야말로 인간을 매일 충만하게 살도록 부추기는 원동력이라는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명성 역시 유한하다. 방탄의 일거수일투족에 숨 넘어가고 죽고 사는 팬들의 열광도 때가 되면 맥주 위의 거품처럼 자연스레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명성 너머, 시대의 아이콘으로 무한히 각인된 이름들을 알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롤링 스톤즈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비틀즈가 그랬다. 서태지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방탄도 시대의 공기가 허락한다면 아마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방탄의 뮤직 다큐멘터리가 선보이는 세계는 기존의 전설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와 비교했을 때 사뭇 특이한 점이 있다. 일례로, 롤링 스톤즈의 투어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큐 역사에 남을 만큼의 반향을 일으켰다. 무대 위의 열광과 무대 뒤에서의 소동 및 개인사를 보여주는 그들의 다큐는 마약, 록큰롤, 프리 섹스가 만연했던 60년대라는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걸작으로 꼽힌다. 범상한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아티스트의 기행이 예술의 표식으로 통용되곤 하는 흐름은 여타 뮤직 다큐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번 더 스테이지>는 한 뼘 다르다. 투어 사이의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는 방법이래봤자 함께 모여 밥 먹고 수다 떨고 작업하고 게임하고 관광을 하는게 다다. 이런 모습은 아티스트의 남다른 면모를 강조해왔던 기존의 다큐의 방식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있다. 더할 나위없이 평범하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무언가가 반짝인다. 


신비화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저 나나 내 주변 친구들이 흔히 할 법한 일들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좀더 나아가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을 멤버들은 마치 짠 듯이 쏟아낸다. 열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그들의 일상은 지난한 연습과 자기 반성의 과정으로 채워져있다. 반짝이는 단 한순간의 열광과 환호성을 위해 그들은 매일을 마치 수도승처럼 자기 계발의 순간으로 채워넣는다.  



방탄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 피디는 방탄이 ‘친근한 이웃의 오빠’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친근한 옆집 애들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영웅. 그들의 그 ‘일상’이 어떤 피와 땀과 눈물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지 <번 더 스테이지>는 또 한번 증명해준다.            



그들의 커리어를 한 단계 도약시킨 2017년을 지나 2018년에 온 우리들. 우리는 <번 더 스테이지>를 통해 1년 뒤의 미래에서 그들의 과거를 목격하고 있다. 동시에 몇십년 뒤의 미래에 서서 지금 한창때의 방탄이 써나가는 서사를 다정하게 회고하는 마음으로 이 다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알고 있다. 이 반짝이는 무대 너머에서 그들이 얼마나 매일을 충실하게 피, 땀, 눈물 그리고 웃음으로 써나가고 있는지. 나의 이 노스탤지어는 너희의 충실한 오늘에 대한 감사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굴러갈 시대의 수레바퀴가 그들 편에 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Posted by 미와카주

<아미 팬덤의 자선 활동>




지난 5월 5일 새벽, 미국 ABC Eyewitness News Ch.7의 기자이자 앵커인 George Pennacchio가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를 언급하며 트윗을 하나 올렸다. 





- George Pennacchio 트윗



스타워즈 팬들의 자선 단체인 Force For Change가 하는 미국 유니세프 자선 미션에 방탄소년단 팬들도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미션의 내용은 #Roar For Change 라는 해시태그를 1번 올릴 때마다 1달러씩 유니세프에 기부돼 굶주린 어린이들을 돕게 되는 것이다. 



글이 올라온 즉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히 해시태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향후 2년간 음반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LoveMyself #EndViolence 프로젝트를 현재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기도 해서 아미들 역시 기부에 적극적으로 동참 의지를 보였다. 


(방탄소년단의 행보와 발맞춰 아미들의 자선활동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각 나라의 아미들이 자국에서 다양한 자선 활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OneInAnArmy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발족, 시리아 등지에서의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원래 이 스타워즈 기부미션은 5/25일까지 20여일 동안 백만 달러를 목표로 발족된 프로젝트였는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국의 아미가 참여하자마자 5시간만에 백만 트윗이 훌쩍 넘어 순식간에 기부 상한선을 넘어섰다. 아미에게 처음 이 미션을 제안한 ABC 방송국 캐스터조차도 이 상황에 깜짝 놀라 다음 같은 트윗을 올렸다.



- George Pennacchio 트윗


 

“이런 팬들을 가진 방탄소년단은 정말 행운아네요. 여러분께 진실한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곧이어, 이 미션을 주관한 스타워즈 공식계정도 백만달러 기부미션을 순식간에 달성하는데 동참해준 아미에게 감사하는 트윗을 올렸다.




- @starwars 트윗



스타워즈 공식계정의 트윗 아래 달린 전세계 아미들의 멘션은 찡한 데가 있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고, 세계를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준 게 다름아닌 방탄소년단이었다며 그들은 모든 공을 방탄소년단에게 돌렸다. 



여기서 하나 재밌는건, 미국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 RM이 밝힌 스타워즈와 방탄과의 연관성이다. 




-  Rolling Stone  인터뷰 중에서




나온지 몇십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타워즈나 마블의 세계관처럼 자신들도 방탄의 세계관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거였다. 이런 그들의 소망은 2015년에 나온 화양연화 앨범의 세계관이 2018년 현재까지 이어짐으로써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를 BU(방탄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방탄 콘텐트 속에 녹여 현재까지 4년여 동안 일관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팬들은 새로운 콘텐트가 나올때마다 일명 ‘궁예’(짐작)를 통해 이 내용이 방탄 세계관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매번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팬덤의 자선활동은 국내 팬덤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서태지 팬덤 같은 경우는 지속적인 자선, 봉사활동은 물론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공론장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혹자는 팬덤이 벌이는 자선활동이 단순히 자신의 가수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비나 걸면서 아무 것에도 기여하지 않는 것보단 첫 동기야 어찌됐든 실질적 도움을 주기위해 움직이는 팬덤의 행위가 이 세계에 이바지하는 바가 많다 본다.        



방탄소년단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아미들이야말로, 어쩌면 방탄소년단이 세상에 내놓은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Posted by 미와카주

<아미, 미국 라디오를 뚫다>



(+수정)



빌보드는 매주 수십개의 차트 순위를 발표한다. 


빌보드 차트의 특징이라면 미국내에서의 소비량, 즉 미국에서 발생한 디지털 스트리밍, 디지털 다운로드, 앨범 구매, 라디오 선곡 횟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만 차트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 소비자들이 듣고 사줘야 올라갈 수 있는게 바로 이 빌보드 차트다. 그중 메인차트라 할 수 있는게 싱글차트인 HOT 100과 앨범차트인 Billboard 200이다.  


간혹 한국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데, 그건 대부분 메인 차트가 아닌 월드 차트, 즉 비영어권 음원/음반들을 대상으로 매겨지는 차트다. 


한국 가수중 메인 차트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큼의 의미있는 성적을 거둔 가수는 아직까지 단 둘 뿐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싸이의 경우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에 31주간이나 머물렀고 후속으로 나온 2곡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메인 싱글차트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DNA>로 4주 연속, <Mic Drop Remix>로 10주 연속 메인 싱글차트에 머물렀다. 나온지 8개월 된 Love Yourself: HER 앨범은 아직까지도 메인 앨범차트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무려 28주째다.


<강남 스타일>은 입소문을 타고 전무후무한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 히트를 쳤다. <강남 스타일>의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최고 기록은 2위였다. 그 정도 파급력이면 한번쯤 1위를 할 법도 한데 끝내 1위로 못 올라선 이유가 바로 라디오 선곡 횟수 때문이었다. 


메인 싱글차트 집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라디오 플레이에서 미국 팝 가수들에 밀린 것이다. 그만큼 미국 라디오는 외국어로 된 노래에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팬들은 이 라디오를 뚫기위해 2016년 무렵부터 노력해왔다. Wings 앨범 발매 시기에 #GetBTSontheRadio 라는 프로젝트가 라디오 공략에 먼저 나섰고, Love Yourself: HER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라디오를 두드렸다. 그 선봉에 트위터 팬계정인 @BTSX50States가 있었다. 





- BTSX50States 홈페이지 소개




BTSX50states는 미국 50개주의 방탄 팬사이트 연합으로 라디오 홍보, 풀뿌리 캠페인, 광고,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내에 방탄소년단을 홍보해왔다. 그중에서도 라디오는 빌보드 차트에 갖는 영향력을 차치하고라도 미국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홍보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들은 라디오를 뚫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BTSX50states 산하에 있는 미국 서부, 남동부, 남서부, 중서부, 북동부 등 각 지역 아미들은 자신의 지역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영향력이 큰 방송국별로 분류하고 디제이들을 접촉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중, 라디오 홍보를 하던 한 아미의 글이 한국 아미들 사이에 번역이 되어 돌았다. 







처음 방탄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을 때 이들은 면전에 대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을 부지기수로 당했다. 


노래를 틀어주겠다 약속한 디제이 말만 믿고 몇시간씩 기다리는건 예삿일이었고, 대놓고 “우리는 ‘진짜’ 노래만 튼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작한 일이지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었죠. 그냥 내가 텔레마케터다 생각하고 계속 전화를 하는 수밖에요” 




BTSX50States는 디제이에게 전화를 걸 때, 그들이 방탄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의 수를 세심하게 나눠 방탄을 소개하는 응대 메뉴얼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



- BTSX50States 디제이 응대 메뉴얼



이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라디오 디제이들이 하나 둘 방탄의 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의 노력을 몇 년간 지켜본 디제이 중 어떤 이들은 결국엔 방탄의 열렬한 지지자, 즉 아미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지난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기간 중 엘렌쇼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아미들의 정성에 감복해 스스로 아미가 돼버린 라디오 디제이 한명의 트윗 메시지로 시작됐다. 



“당시 엘렌 쇼의 프로듀서가 LA 킹스 하키팀 팬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프로듀서에게 트윗 메시지를 보냈죠. ‘킹스도 BTS가 당신 쇼에 출연하는걸 원한다’고요” 메시지를 받은 엘렌 쇼 프로듀서는 킹스 팀 선수에게 그 메시지를 보여줬고, 그 선수는 “출연시키지 그래?”라고 답했다. 


AMA 무대를 마친 방탄은 정확히 일주일 뒤 엘렌 쇼에 출연했고, 더불어 키멜 쇼, 레잇레잇 쇼까지 3대 공중파 방송국 메인 토크쇼 모두를 섭렵했다. 


(라디오 홍보 활동 중 에피소드는 각주의 기사를 참조한 것임)[각주:1]



미국 아미들의 이런 노력과 방탄의 미국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상승하자, 라디오에서 방탄의 노래가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미들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디제이들에게 보냈다. 차 안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라디오에 나오는 방탄의 노래를 들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미들의 영상을 받아본 디제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방탄 노래를 듣는 소비자층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는 더 많은 선곡 횟수로 이어졌다. 


한번이라도 방탄의 노래를 틀어준 디제이들은 그 지역 아미들로부터 꽃다발이나 디저트와 함께 정성스러운 카드를 받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각국에서 수많은 디제이들이 카드가 동봉된 아미의 소포를 받았다. 


카드를 받은 디제이들은, 수많은 가수의 팬들을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의 가수에 대해 열정적인 팬덤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BTSX50States가 주도하는 라디오 홍보가 주효했던 이유는, 이들이 지역 디제이와의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신청할 때도 항상 예의를 갖춰 부탁하고, 선곡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기민하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지역 디제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노래를 신청만 하고마는게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방송을 듣는 지역 청취자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영상과 사진을 보내 확인시켜주는 걸 잊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캠페인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팬계정 관리자 대다수가 십대가 아닌 직업을 가진 성인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인한 바로는 BTSX50States뿐 아니라 다수의 해외 방탄 팬베이스 관리자들 중에 삼사십대의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나이 어린 팬들을 도와 프로젝트를 조직하고,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부드러운 접근으로 음악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대하는 이들의 손끝에서 방탄 해외 알리기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팬은 프로모션을 가장 열정적으로, 그것도 무보수로 하는 존재들이라고. 열정에 조직력까지 더해진 방탄 팬덤은, 음악계 인사들에게 신기함을 넘어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오늘날 방탄의 서양 내 인지도의 많은 부분이 무보수 프로모터, 바로 아미들의 공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 Chang Dong-Woo, Yonhap News Agency, 2017/12/22 [본문으로]
Posted by 미와카주

<방탄소년단의 일급 프로모터, 아미> 




전세계 그 어떤 팬덤보다 열정적인 투표 화력과 홍보활동으로 자신의 가수를 지원사격하는 것은 대다수 K팝 팬덤이 공유하는 특성이지만, 그중에서도 아미의 접근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다. 목표하는 지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사실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국내 아이돌 그룹 중 방탄의 입지가 독보적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데뷔 해인 2013년부터 빌보드와 AMA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2017년에 이르기까지, 방탄 팬덤은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보다 강력했다. 방탄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 피디도 방탄의 인기가 해외에서 역수입된 측면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 당시 해외 팬들은 자국에서 방탄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다. 방탄의 국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팬들은 멜론 같은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 계정을 만들어 방탄 곡을 스트리밍 하거나, MAMA 등 국내 시상식 투표참여를 위해 단체로 계정을 만들고 앱을 깔았다. 한마디로 해외 팬덤이 국내 팬덤을 도와 함께 방탄의 국내 입지를 만들어간 것이다. 방탄의 국내 인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글로벌 팬덤은 이제 방탄을 K팝 아이돌이 아닌 국제적인 아티스트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런 결집력이 폭발한 것이 바로 2017년 빌보드 시상식이었다. 




당시 탑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 후보로 오른 방탄을 빌보드 시상식에 세우기 위해 전세계 아미가 하나가 되어 무서운 응집력으로 투표에 올인했다. 결국 투표에서 방탄은 3억표 이상을 득표했고, 6년 연속 이 상의 주인공이었던 저스틴 비버는 2천만표를 웃도는 데 그쳤다. 해외 팬들의 ‘빌보드에서 방탄 알리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서 시상식이 열리는 라스베가스로 팬들이 몰려들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방탄소년단을 직접 보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들이 빌보드 시상식에 참석할 때 그 뒤를 어마어마한 팬덤이 받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작열하는 5월의 라스베가스 태양 아래 몇십 시간을 지치지않고 방탄의 노래를 부르며 기다린 팬들은 마침내 시상식장에 입성하는 방탄소년단을 향해 어마어마한 함성을 질러댔고, 이를 본 미국의 미디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비단 시상식장 입구뿐만 아니라 시상식장 내부도 아미들로 가득 채워졌다. 방탄소년단이 수상을 하자 온 시상식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참석자들, 그리고 미국 매체의 눈이 방탄소년단에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빌보드에서의 이 같은 열광은 아직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해 11월, 방탄은 국내 아이돌 최초로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무대에 섰다. 내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도 바로 이 시상식 무대를 보고서였다. 방탄의 무대가 펼쳐지는 시상식장 곳곳에서 공식응원봉인 아미밤(ARMY Bomb)을 들고 한국어 떼창을 하는 외국 팬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한 광경으로 다가왔다. 흥미가 생겨서 찾아본 그날 공연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들을 보면서, 애초의 신기함은 점점 경악스러움으로 변해갔다. 시상식 현장에서 또는 거실 TV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방탄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서양 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노래가 나오기 전부터 멤버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외치는 팬,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 팬, 기쁨을 주체 못하고 “Take the world!”(세계를 정복해버려) 하며 TV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팬. 방탄의 미국 TV 데뷔를 지켜보는 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 마음만은 하나였다. 




바로 방탄이 세계적 무대에 선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 대체 자기 고향 사람도 심지어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동양의 작은 나라 출신 가수가 유명 시상식 무대에 선 게, 그들이 이렇게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인가. 그날 그렇게 호기심과 이상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방탄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결국엔 열혈 팬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어떻게 보면 다 그날의 아미들이다. 




대체 방탄소년단이란 그룹이 뭐가 어떻길래 다들 저렇게 열광하는걸까? 이 궁금증은 미국의 미디어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에 주목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를 위해 LA 공항에 도착했을 때 팬들의 반응을 보고, 엘렌 쇼의 호스트인 엘렌 드제너러스는 “마치 비틀즈가 미국에 왔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방탄소년단이 미국 시장에 눈도장을 찍게 만든 가장 확실한 패는 바로 미국 아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열광이었다.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바로 가장 효과적인 프로모션이 되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