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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13 시사IN 기고 <방탄소년단이 포스트 케이팝인 이유> 1

*2018.6.12 발행된 시사IN에 기고한 글입니다. 


방탄을 두고 'K팝이다' '아니 K팝이 아니라 BTS팝이다' 하는 논쟁이 있어온 지도 꽤 됐죠.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그걸 뛰어넘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방탄 역시 K팝의 정체성을 가진 동시에 이를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K팝이면서 K팝이 아닌거죠. 그런 경우에 '포스트' 라는 말이야말로 가장 알맞은 수식어라고 봅니다. 


(기사링크)





방탄소년단이 포스트 케이팝인 이유

 


“BTS 콘서트에 참석한 다른 아티스트들 모습 잘 봤다”

“살면서 다 큰 성인들이 그렇게 소리지르는 모습은 난생 처음 봤다”   

“아시안 인베이젼! 뉴 비틀즈의 탄생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시상식에 등장한 지난 (미국 현지시간) 20일, 현지인들이 SNS에 남긴 말이다. 현지 미디어는 이제라도 BTS 열풍에 합류해야하나 조바심을 냈고, R&B 가수 갈란트와 모델 출신 방송인 타이라 뱅크스 같은 셀럽들은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때 BTS는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현상”이라며 거듭 강력한 지지를 표현했다. 빌보드 공연 이틀 전 발매된 정규 앨범은, 이 글을 쓰는 현재 한국가수 최초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1위 데뷔를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컴백과 함께 펼쳐진 이런 현상은 유의미한 변화의 시그널을 보낸다. 빌보드 시상식이나 엘렌쇼에서 방탄을 소개할 때면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라는 수식어가 여지없이 따라붙었다. 피치포크와 롤링 스톤 등 유력 음악지는 새 앨범에 대해 진지한 평과 함께 준수한 평점을 매겼다. 애플 뮤직 에디터는 앨범 프로필에 “케이팝의 경계를 부순 그룹”이라는 소개를 썼다. 아시아, 케이팝, 아이돌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수식어가 아니다. 


한편, 국내 언론의 경우는 케이팝 아이돌이 주류 음악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에 좀더 고무된 모습이다. 기사 제목에 ‘점령’ ‘정복’ 같은 단어가 유독 눈에 띄고 기자회견에서도 빌보드 차트 1위 가능성을 집요하게 묻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케이팝의 세계화’라는 국가주도 한류의 그림자를 다 떨쳐내지 못한 듯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지금의 현상은 정말 케이팝이 세계에 인정받은 결과인걸까? 


케이팝은 일반적으로 한국 가수 전체가 아니라 랩과 보컬,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한국 아이돌 음악을 카테고리화 하는 용어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팬덤 문화 역시 케이팝을 정의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십대를 위주로 한 팬층, 노래에 따른 집단적 응원구호, 자신의 가수를 기죽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조공문화, 전세계 그 어느 팬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투표화력, 홈마/팬캠/출근길사진/공항사진으로 대변되는 B컷문화, 사생팬 등이 그것이다. 방탄 역시 이런 케이팝 토양에서 탄생한 그룹이며, 그로부터 받은 수혜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나온 지 이틀밖에 안된 <Fake Love>가 빌보드에서 떼창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획사가 노래 발표와 함께 ‘응원법’을 동시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케이팝 가수의 개별적 퍼포먼스는 노래를 방해하지 않는 팬들의 적절한 응원구호와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러나 케이팝이 비록 글로벌한 서브컬쳐의 지위에 올랐을지언정 아직까지 국내외 주류 음악시장에서 진지한 음악으로 대접받지 못한 이유 역시 선명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기본적으로 십대 팬층의 구미에 맞춰 기획사가 만들어낸 공장형 아이돌이라는 점이다. 팬덤의 규모와 충성도에 따라 아이돌 수명이 결정되는 현재의 무한경쟁 시스템 안에서 케이팝 아이돌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일, 즉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활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내면 곧바로 월드 투어에 돌입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소위 ‘활동기간’ 동안 음악 순위방송과 팬사인회, 팬미팅, 예능, 인터뷰 같은 루틴을 숨막히게 감당해야한다. 


방탄 역시 이런 케이팝 루틴을 대부분 수행해왔다. 뭔가 한 끗 다르다 느꼈다면, 그건 그들이 음악적 완성도를 최우선 순위로 둔다는 사실일 것이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멤버들이 거의 전곡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한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방탄 새 앨범 CD를 스피커로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기술적 평은 할 수 없지만, 쎈 음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데도 마냥 귀를 때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풍성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보편적인 케이팝 앨범 후반작업의 수준을 뛰어넘어 레코딩과 믹싱 완성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방탄이 케이팝의 어떤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들의 팬덤 아미(A.R.M.Y.)의 양상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국내 포털의 방탄 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미 삼,사십대가 점령한지 오래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의 음원사이트 리스너 통계 역시 이,삼십대가 10대를 앞서고 있다. 해외 팬덤도 마찬가지다. 한 방탄 해외 팬베이스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즉 이십대가 팬 비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트위터의 #BTSisNotYourAverageBoyBand (“방탄은 당신이 생각하는 보통의 보이밴드가 아니다”) 라는 해시태그를 들어가보면, 10대부터 60대까지 방탄의 음악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는지, 어떻게 자신을 구원했는지 절절하게 고백하는 글로 넘쳐난다. 이번 빌보드를 위해 입국한 LA 공항에서 팬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에 (방탄을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을 묶고 일렬로 늘어서 방탄의 입국길을 안전하게 지켜준 #PurpleRibbonArmy 프로젝트는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마저 “믿기 힘든 일”이라며 감탄하게 했다.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팬들을 위해 세계 각국 언어로 위로를 전하는 심리전공자들의 모임(@BTS_AHC), 일회성이 아니라 시리아 등 세계의 고통받는 곳에 꾸준히 아미의 이름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단체(@OneinAnArmy)도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방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고, 미약하나마 이를 되갚아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이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아이돌 팬이라고 생각했던 집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건, 방탄의 새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에서 미국 힙합 가수 포스트 말론과 치열하게 경쟁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의 외국 팝가수 팬들 그중에서도 흑인팬들이 주축이 되어 방탄 신곡을 집단 스트리밍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StreamFakeLoveToEndTrumpsAmerica) 한마디로, 유색인종이 ‘트럼프의 징후’인 포스트 말론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는거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이 상징하는 징후적 음악이 득세하는 현재의 미국 음악계에서 방탄이 이를 깨뜨릴 유의미한 카운터파트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데 이게 만약 다른 케이팝 그룹이었다면 조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알다시피, 케이팝 내부의 인종주의적 혐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기라며 흑인 영어를 흉내낸다거나, 흑인 힙합에 대한 섬세한 문화적 이해없이 오로지 거기서 스웨그만을 취하는 등 케이팝 씬의 인종주의에 대한 무지는 해외팬들의 격분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다. 초창기에는 방탄도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해외팬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자 여기에 대한 솔직하고 구체적인 사과와 함께 확연한 자기 성찰이 뒤따랐다.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에 대해 호의적인 해외 문화권 특성에 힘입어, 팬덤 내부의 결속은 물론 방탄은 이전보다 더 크고 다양한 팬층을 흡수해 나갔다.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방탄소년단은 케이팝의 토양 위에 서있지만 동시에 이를 성큼성큼 뛰어넘는 중이다. 우울증과 정신건강, 한국에서 특히 터부시되는 주제를 음악을 통해 서슴없이 말하며 그래도 “넌 혼자 걷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방탄에 대해 전세계 팬들이 느끼는 애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방탄을 두고 “피곤한 얼굴. 어쩐지 나와 닮은 듯한 그늘. 우리 같이 살아내고 있다고. 천천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가자 말하는. 목적과 목표만 중요했던 날들의 끝과 함께 찾아온 우리의 아이콘”이라 말하는 어느 팬의 말은 그들에게 받는 위로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니 달콤하고 화려한 포장으로 일시적 탈출구를 제공해주던 케이팝을 벗어나 밀레니얼 세대의 맨얼굴이자 롤모델로 받아들여지는 방탄을 두고 포스트 케이팝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과한 시도가 아니다. 


케이팝에서 태어났으나 개별적인 아티스트리와 영향력으로 자신들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바라는 게 있다면, 국내 언론이 마치 올림픽 금메달 중계하듯 이들의 차트 성과만 조명하지 말고, ‘밀레니얼 세대의 맨 얼굴’로서 이들이 갖는 동시대적 의미에 대해 좀 더 준비된 비평으로 접근해주길 바란다. 또한 아티스트로서 이들이 갖는 잠재력이 충분한 여유를 갖고 펼쳐질 수 있도록 이제 케이팝 산업계의 소모적 루틴도 조금은 변할 때가 되지않았나 생각한다.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