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고리아

인류는 이 땅에 문명을 일구었으나 역설적으로 그 문명으로 인해 망해갈 존재들이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를 비롯해 21세기 들어 주기적으로 일상을 흔들어놓는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을 지켜보면서 재앙의 근원은 문명과 모더니티 그리고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다는 학자들의 말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재앙 혹은 파국은 현대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가장 최전방에 있는 영화에서 무척이나 알뜰하게 써먹고 있는 소재다.자본주의의 파국조차도 자본주의적 생산에 이용되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문화라는게 기본적으로 당대의 무의식적 감정 구조를 드러낸다고 볼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이 파국적 감정은 어느 정도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이루는 서사는 기본적으로 멤버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와 갈등의 내용(교육시스템, 경쟁, 청춘의 방황, 자아의 흔들림)을 좀 더 서사화된 형태의 가상적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식으로 구사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Map of the Soul 앨범 시리즈부터는 모티프가 된 융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오브제들, 즉 그리스로마 신화와 니체의 사상에서 영향받은 모티프들이 뮤직비디오와 공연 구성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어둠의 상징인 포도와 뱀의 형상 같은 것들 말이다.

 

 

<ON> 역시 Map of the Soul 시리즈 앨범인 "7"의 타이틀 곡이니만큼 신화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무수한 상징들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폐허가 된 황무지, 화살을 맞고 죽어간 사람들과 비둘기, 노아의 방주, 거대한 벽이 가로막은 지평선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세팅의 분위기는 다름아닌 <매드 맥스>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틱 영화의 한 장면이다.

 

포스트 아포칼립틱 영화는 파국으로 인해 문명이 멸망한 뒤 원시적으로 돌아간 세계와 그속의 군상들을 그리는 영화로, 이런 종류의 영화 속에서는 늘 구원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어떻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알다시피,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 Map of the Soul:7은 융 철학에서 빌어온 그림자(shadow)와 자아(ego) 사이의 혼란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매우 개인적인 방탄소년단 자체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리부트하는 이번 앨범 속 곡들은 7년을 걸어오면서 맞닥뜨린 개인적 파국과 혼란 그리고 그런 혼란조차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다짐들이 담겨있다.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철학적 문제들을 가상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파국과 포스트 아포칼립틱한 배경은 이런 문제를 메타적으로 다루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세팅이었을 것이다. 7년차 그룹으로서 어떻게 자신들의 내면과 화해함으로써 영혼의 구원에 이를 것인가를 다루는 데 말이다. 

 

마치 <월드워Z>에서 좀비떼를 가로막기 위해 세운 거대한 벽 같은 곳이

폐허가 된 세계에서 만신창이가 된 멤버들과 사람들 눈앞에서 열리고

이윽고 황무지를 건너가 깍아지른듯한 태고의 절벽을 천천히 오르는 멤버들. 

 

내면의 고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새로운 영웅 서사로 재탄생한다. 

(약간 게임 영웅 서사 같다는 생각은 빅히트가 게임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지도)

Posted by 미와카주

방탄소년단 팬덤비평서인 저의 책 <BTS와 아미 컬처>가 7/9일 커뮤니케이션북스를 통해 출간됩니다. 이제는 서로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BTS/아미 현상을 팬덤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기록한 ‘대중적 비평서’이자, 문화연구자이자 팬으로서 지난 2년간 아미로 함께 웃고, 울고, 살았던 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책에도 나오듯 문화적/사회적/정치적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시대의 팬덤문화로서의 아미를 만들어주신 모든 개인팬들, 팬베이스, 그리고 기꺼이 인용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러 아미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책의 내용과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서문 발췌와 목차 그리고 추천사를 올리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할까 합니다. 

 

1. 서문 및 목차

 

"이제껏 방탄소년단이 이뤄낸 일들에는 그 어느 것 하나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이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방탄이 내딛는 모든 행보가 곧 한국 대중음악계의 역사가 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방탄이 이처럼 경이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으로 전세계 언론이 한결같이 지목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팬덤인 아미(A.R.M.Y.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다. 방탄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방탄이 음악에 부여한 메시지를 체화하고 열렬히 전파하는 아미가 보여주는 강력한 글로벌 결속력은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가 그 대상에 대해 신념에 가까운 열렬한 감정을 공유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다. 방탄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아미라는 취향의 공동체. 이 책은 취향의 공동체가 가지는 가장 열렬한 형태의 결과물인 아미를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BTS와 아미 컬처>가 조망하는 것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이라는 일종의 상상적 공동체인 아미가 어떻게 자신들과 기존 K팝 문화 사이에 인식적 거리를 만들고 실제적인 팬 활동으로 글로벌 주류 음악계에 방탄의 자리를 공고히 해 나가는가 하는 과정이다. 특히 아미가 문화 권력을 가진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어떻게 타협하고 교섭하면서 방탄소년단의 문화적 신분을 만들어 내는지 관찰한다. 이런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아낸 이 책의 정체성은 비평적 이론서라기보다는 아미라는 팬덤의 역동이 동시대 문화 지형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포착하는 일종의 아카이브적 기록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미에게는 그들의 행적에 대한 정리된 기록물로, 아미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는 “아미 본격 해부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책은 아이돌 팬덤에 대한 비평적 담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팬덤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평가를 좌우하며 이를 둘러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빠부대’, ‘빠순이’ 같은 멸칭, ‘어리고 철없는 여자애들의 문화’라는 편견어린 시선이 따라붙는 아이돌 팬덤. 이들에 대한 여전한 무시와 편견은 여성, 청소년, 소비문화에 대한 사회의 경직된 시선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 아무쪼록 이 책이 목표로 하는 팬덤 내부의 역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아이돌 팬덤에 붙은 성급한 오명을 제거하고 사유를 동반한 깊이 있는 비판과 평가를 불러오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카-팬인 나를 ‘아미’라는 열광적이고 역동적인 세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 아미들에게 문화연구자인 헨리 젱킨스(Henry Jenkins)의 말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가 팬덤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팬덤 안에서 배운 것이다” "

 

목차 및 보도자료 링크- http://commbooks.com/도서/bts와-아미-컬처/

 

2. 애정어린 추천사를 써주신 김창남 선생님과 이지영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아미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애정 어린 비평서다. 문화연구자이자 방탄의 열성 팬이기도 한 저자는 방탄과 아미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 성장하고 진화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정직하게 보여 준다. 그 과정은 때로 놀랍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_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에까지 등장한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문화적 주체로서의 소비자인 팬덤 아미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아미를 분석하고 있다. 방탄을 전 세계에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만든 아미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아미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구체적인 통찰을 준다. 
_ 이지영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

 

ps: 이 책의 수익의 5%는 유니세프와 BTS가 함께하는 Love Myself 캠페인에 기부됩니다.

 

 

Posted by 미와카주

(의역 많음)

 

누군가 세계 정복을 하려면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할까?

 

탁월한 재능과 매력, 친절함과 이타성,

그리고 헌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하나 빠진게 있다. 

 

스타의 노력을 받쳐주고,

서툰 부분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며,

자신들의 눈에서 쏟아져 나온 빛으로

매일 밤 하늘에 그 스타의 이름을 새겨주는 존재들,

바로 헌신적인 팬들(community)의 존재이다.

 

BTS는 바로 이런 변수들을 통해 정상에 올랐다.

 

지난 몇년간 이 K팝 그룹은 세일즈 기록을 갱신하고, 수많은 상을 타고, 전세계를 돌며 어마어마한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그야말로 음악계를 휩쓸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대사로서의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BTS라는 이름 뒤에는 음악은 언어의 장벽을 넘을만큼 강력하다는 사실을 믿는 7명의 놀라운 청년들이 있다. 이들에게 음악은 정말로 만국 공통어인 것이다. 

 

자기 확신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 반짝이는 노래에 섬세하게 담긴 철학, 정교한 안무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진정한 시너지와 형제애, 셀 수 없는 자선활동과 인류를 위한 노력을 통해, BTS 일곱명은 그들을 사랑하는 수백만의 팬과 그들의 부정할 수 없는 매력에 빠진 사람들의 획기적인 롤 모델이 되어주었다.

 

내가 이 '소년들'(나와 그리고 팬들이 그들을 애정을 담아 부르는 호칭)을 알게된 것은 몇년전의 일이다. 그후 나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몇차례 그들과 어울릴 기회를 가졌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무척 세련되고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그러나 박수갈채를 받는 말끔한 안무와 동작들 뒤에는 서로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비밀 악수를 교환하며 함께 선물을 주고받는, 음악과 서로를 그리고 팬들을 사랑하는 보통의 청년들이 존재한다.

 

BTS에게 세계 정복이란 유행하는 춤(주: 여기서는 남부에서 유행하는 '에잇 카운트'라는 춤에 빗댐)을 하나 마스터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그게 쉽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다만 이 청년들이 자신들의 행보에 매 순간 쏟는 사랑과 노력을 아직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시는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싱어송 라이터이다. 

  

 

  

 

 

 

 

 

Posted by 미와카주

(2018.7.31 발행된 격월간 교육월간지 <민들레> 11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방탄소년단 신드롬의 비밀: 신념에 가까운 강력한 취향의 공동체




세계 최고 보이밴드의 탄생


EDM과 퍼포먼스를 장착한 아이돌이 한국 가요시장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고 K팝이 해외에서의 인기를 타고 드라마에 이어 한류의 선봉으로 거론되던 시절인 지난 2013년, ‘방탄소년단’이라는 낯설고 어색하기까지한 이름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다. 당시 SM, YG, JYP라는 빅3 기획사의 삼파전 양상이던 가요계에서 중소기획사인 빅히트가 탄생시킨 이 그룹은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색깔로 힙합을 꼽으며 차별화된 정체성을 내세웠다. 팬덤의 규모와 영향력이 곧 아티스트의 수익으로 직결되는 K팝 시장 상황에서, 아이돌이 얼마나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느냐는 곧 그 아이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요소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돌 팬들로부터 ‘방시혁이 탄생시킨 소년단이냐’ ‘덕질할 맛 안나게 생긴 중소돌’ 등의 조롱을 받으며 등장한 그들의 미래는 몹시도 불투명해보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미디어로부터 BTS(Beyond the Scene)라 불리는 방탄소년단은 이번 5월에 발표한 정규 3집을 한국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에 1위, 메인 싱글 차트에 10위로 진입시키며 현재까지 6주째 양대 메인 차트에 머물러 있다. 빌보드 시상식이나 미국 인기 토크쇼인 엘렌쇼에서 방탄을 소개할 때면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라는 수식어가 여지없이 따라붙는다. 《피치포크》와 《롤링스톤》 등 유력 음악지는 새 앨범에 대해 진지한 평과 함께 준수한 평점을 매겼다. 글로벌 스트리밍 사이트인 애플 뮤직의 에디터는 이들의 앨범 소개에 “케이팝의 경계를 부순 그룹”이라는 프로필을 올렸다. 보수적이기로 정평이 난 그래미조차 BTS가 팬들을 위해 발표한 무료 커버곡까지 기사로 다룬다. 아시아, 케이팝, 아이돌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수식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BTS가 내딛는 모든 행보가 곧 한국 음악계의 역사가 되고 있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이런 그들의 뒤에는 서구 미디어가 한 목소리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팬덤”이라 평가하는 아미(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 A.R.M.Y.), 1500만 글로벌 방탄 팬덤이 버티고 있다.



방탄의 날개, 아미


2018년 방탄 월드투어 콘서트는 티켓팅 시작과 동시에 50여만 표가 전석 매진됐으며, 암표 값이 최고 장당 1000만원까지 뛰기도 했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등 SNS 상에서의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계정과 무려 1억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미국 가수 저스틴 비버가 언급되는 수를 합쳐도 방탄소년단의 절반도 안 된다. 이런 영향력을 배경으로 방탄은 빌보드 시상식에서 2년 연속 ‘탑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방탄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에서 1위를 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팬덤인 ‘아미’에게 축하를 전할 정도로, 방탄의 성공에 있어 아미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의 보이 밴드, 그것도 거의 모든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가수의 세계적인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앨범과 음원을 반복해 사들이고, 하루종일 음원을 스트리밍하며, 온갖 시상식에 엄청난 투표 화력을 쏟아붓는건 물론, 미디어와 라디오에 조직적으로 홍보를 하는 글로벌 팬덤 아미의 조직력과 영리함은 여타 케이팝 기획사들로부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미 팬덤의 남다른 양상


케이팝은 기본적으로 십대 팬층의 구미에 맞춰 기획사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공장형 아티스트 생산 방식으로 돌아간다. 춤, 노래, 랩, 얼굴 등 십대 팬들이 좋아할만한 덕목을 갖춘 멤버들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 팬덤이 생성되면 팬덤의 규모와 충성도에 따라 수익과 그룹 수명이 결정된다. (이는 아이돌 수익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게 팬들이 구매하는 굿즈(아티스트 파생상품)나 공연 또는 광고계약이기 때문인데, 방탄은 여기서도 예외적이다. 이들은 굿즈와 공연티켓만큼이나 실물 앨범이 많이 팔리는 전세계 몇 안되는 가수 중 하나다.) 따라서 케이팝 아이돌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일, 즉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활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또한 타겟층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예능에 자주 노출되는 케이팝 아이돌의 이름은 알지만 그들의 음악은 잘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방탄 역시 십대를 타겟으로 기획된 케이팝 아이돌 중 하나지만, 팬덤 양상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세대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트위터에는 오로지 방탄소년단 덕질을 위해 생전 처음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는 3-40대 아미들로 가득하고, 국내 포털의 방탄 기사에 달린 댓글 연령대 1위 역시 그들이 차지한지 오래다. 해외 팬덤도 마찬가지다. 한 방탄 해외 팬베이스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즉 이십대가 팬 비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방탄은 더 이상 십대 한정 아이돌이 아닌 것이다. “여러분이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노란색이든 무지개색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언어와 인종을 비롯해 모든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라는 리더 RM의 발언은 단순히 외국 팬층을 겨냥하지 않는다. 사회 문제, 성소수자 문제, 우울증과 정신건강 문제 등 한국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음악과 발언을 통해 서슴없이 말하며 “넌 혼자 걷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방탄에 대해 각계각층의 팬들이 느끼는 애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방탄이 보여주는 이런 배타적이지 않은 포용성에서 배태된 팬덤은 당연하게도 나이뿐 아니라 직업, 인종, 젠더, 종교 같은 부분에 있어서도 기존의 K팝 팬덤에 비해 월등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팬들은 멋지고 예쁜 모습을 소비하는 팬-아이돌 관계를 넘어서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의 감각을 방탄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트위터의 #BTSisNotYourAverageBoyBand (“방탄은 당신이 생각하는 보통의 보이밴드가 아니다”) 라는 해시태그를 들어가보면 방탄의 음악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는지, 어떻게 자신을 구원했는지 절절하게 고백하는 글로 넘쳐난다. 자존감이 부족한 십대,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부, 중병으로 희망을 버린 채 살아가던 환자, 연인과의 잘못된 관계에 매여 헤어나오지 못하던 여성. 이들에게 방탄의 존재와 음악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 발견한 유일한 빛”이라 칭할 정도로 강력하다. 또, 올해 빌보드 시상식을 위해 입국한 LA 공항에서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에 (방탄을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을 묶고 일렬로 늘어서 방탄의 입국길을 안전하게 지켜줬다. 이 #PurpleRibbonArmy 프로젝트는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마저 “달려드는 팬은 봤어도 지켜주겠다 나서는 팬은 본 적이 없다”,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라며 감탄하게 했다.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팬들을 위해 세계 각국 언어로 심리상담과 함께 위로를 전하는 심리전공자 팬들의 모임, 일회성이 아니라 시리아 등 세계의 고통 받는 곳에 꾸준히 아미의 이름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단체도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방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고, 미약하나마 이를 되갚아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이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아이돌 팬이라고 생각했던 집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아이돌이라고 규정 짓는 바운더리 너머로 끊임없이 남다른 존재 방식을 증명하는 방탄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의 월드 투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번 더 스테이지>는 월드 투어 무대와 무대 뒤의 모습, 그리고 투어 사이에 멤버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을 보여준다. 투어 도중 이들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싸가지고 온 장비를 호텔방에 풀어놓고 음악 작업을 하거나, 투어가 열리는 도시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바다에 가서 잠깐 난 짬을 만끽하거나 한다. 때로는 무대에 대한 의견 충돌로 두 멤버가 싸운 뒤 멤버들이 모두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아티스트의 범상치 않은 면모를 강조해왔던 기존 음악 다큐와는 상당히 다르다.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다. 아이돌이 가진 신비화를 저 멀리 던져버린 채 그저 내 주변 친구들이 흔히 할 법한 일들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좀더 나아가고 싶다는 존재론적 열망을 입을 모아 쏟아낸다. 열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그들의 일상은 지난한 연습과 자기반성의 과정으로 채워져있다. 반짝이는 단 한순간의 열광과 환호성을 위해 그들은 매일을 마치 수도승처럼 자기 계발의 순간으로 채워 넣는다. 방탄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 피디는 방탄이 ‘친근한 이웃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친근한 옆집 애들 같은 영웅들의 일상이 어떤 피와 땀과 눈물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보면서, 팬들은 공감과 함께 스스로의 삶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평범함과 초월. 언뜻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양가적 특성이야말로, 방탄에게 동시대 가장 열성적인 팬덤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신념에 가까운 취향의 공동체


“더 이상 혁명을 꿈꿀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독재와 반민주, 이데올로기 대립이 만연했던 과거 세대의 사람들에게 신념은 더없이 중요한 삶의 요소였다. 신념이 곧 개인의 삶의 방식을 결정지었으며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신념의 공동체’를 통해 동질감과 세계 인식을 얻은 것이다.  냉전과 혁명이 사그라진 자리에 일상이 들어서고,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헬게이트가 열린 지금 동시대인들에게 있어 과거 신념이 차지했던 자리에 들어선것은 어쩌면 ‘취향’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흑과 백이 분명한 신념의 공동체 대신 들어선 –비록 소비 자본주의의 입김이 강력하게 느껴지지만- 취향의 공동체는 현대인들의 친교와 소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취향으로 뭉친 공동체가 비단 일상에서만 그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봐도,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들의 모임은 ‘이니 팬덤’이라 불릴 정도로 이른바 ‘정치의 팬덤화’ 현상을 보여준다. 팬덤 문화야말로 취향의 공동체가 가장 충성스러운 형태로 응집된 방식인데, 정치적 신념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취향 공동체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탈중심화되고 해체된 지금의 포스트모던 세계를 잘 설명한다.  


팬덤 아미가 보여주는 강력한 결속력은,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가 그 대상에 대해 신념에 가까운 열렬한 감정을 공유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들이다. 케이팝의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방탄소년단의 에너지와 퍼포먼스에 1차로 유입됐다가, 결국은 그들의 가사와 세계를 대하는 태도로 인해 코어팬이 된 팬들. 방탄의 음악과 행보를 통해 위로를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 이 팬들의 연대야말로 방탄이 가진 가장 정치적인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가 주는 위로가 곧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마취제라고 생각하는 아도르노적 프레임에서는 별 힘이 없을지 모르나, 하루를 멀쩡히 살아내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수용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다가와 꽂히는 위로와 감응은 신자유주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민들에게 있어 최고의 일상의 혁명, 즉 도중에 포기하거나 죽지 않고 하루를 더 살아보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금의 세대는, 겉보기에 소비자본에 맹목적으로 휘둘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면적으로는 나름의 혁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편견을 벗고 방탄의 노래 속 가사들을 유심히 들어보길 바란다. “멈춰서도 괜찮아. 이젠 목적도 모르는 채 달리지 않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너를 이루는 모든 언어는 이미 낙원에” 방탄의 신곡 <낙원>에 들어있는 이 가사가, 신자유주의 세계 시민들의 anthem(국가)이라는걸 그제서야 알게 될 것이다. 







Posted by 미와카주


1. Report


1996 UN Report on Sex Slave by Japanese Military 

http://hrlibrary.umn.edu/commission/country52/53-add1.htm …


UC Berkeley Journal of Int’l Laws on Japanese Army/ Sexual Slavery

https://scholarship.law.berkeley.edu/cgi/viewcontent.cgi?article=1242&context=bjil …




2. Book


-History Book


<Korea Old and New: A History> by Carter J. Eckert & Ki-Baik Lee

http://a.co/d/dsKZmJc



<A Korean History For International Readers> by The Association of Korean History Teachers 

http://a.co/d/eNrIgID



-Novel


<A Gesture Life> by Chang-rae Lee

http://a.co/d/30coMns


<When My Name Was Keoko> by Linda Sue Park

http://a.co/d/idDsnkb


<White Chrysanthemum> by Mary Lynn Bracht

http://a.co/d/fZKSaIC


<Daughters of the Dragon> by William Andrews 

http://a.co/d/1sCQXse


<Pachinko> by Min Jin Lee

http://a.co/d/dHQz4LX




3. Video



<Japanese Colonial Policy and its Impact on Modern Korea>

https://youtu.be/-m72sZVGLq4


<Korean History- Japanese Occupation Period>

https://youtu.be/c7WJEN6vUlk


<History Revisionism and Japan>

https://youtu.be/lnAC-Y9p_sY


<Japan's Rising Right-Wing Nationalism> 

https://youtu.be/IHJsoCAREsg


<Documentay Proof of Japan's Central Role in the comfort woman system>

https://youtu.be/UzCBZSCs1ZE


<Animation HERSTORY> about 'comfort women' 


ENG sub: 

https://youtu.be/zYjXIye73ks


JPN sub

https://youtu.be/aEm6VYRjmCM


<Apology> Trailer by Tiffany Hsiang

https://www.nfb.ca/film/apology/ 


<Life as a comfort woman: Story of Grandma Kim Bok-dong> 

https://youtu.be/qsT97ax_Xb0


<The Kanto Earthquake & Korean Massacre>

<ZDF Documentary on Japan's Unit 731- Human Experiment>




4. Article



<BBC, What Japanese History Lessons Leave Out>

https://www.bbc.com/news/magazine-21226068


<Deutche Welle, Japan’s nationalist schoolbooks teach a different view of history>

https://m.dw.com/en/japans-nationalist-school-books-teach-a-different-view-of-history/a-40092325


<Wikipedia, Japanese History Book Controversy>

https://en.m.wikipedia.org/wiki/Japanese_history_textbook_controversies



5. Website


E-Museum of the Victims of Japanese Sexual Slavery by Korean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http://www.hermuseum.go.kr/eng/mainPage.do


A website that summed up atrocities by Japan/Germany during WWII

http://maywespeak.com

Posted by 미와카주

*2018.6.12 발행된 시사IN에 기고한 글입니다. 


방탄을 두고 'K팝이다' '아니 K팝이 아니라 BTS팝이다' 하는 논쟁이 있어온 지도 꽤 됐죠.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그걸 뛰어넘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방탄 역시 K팝의 정체성을 가진 동시에 이를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K팝이면서 K팝이 아닌거죠. 그런 경우에 '포스트' 라는 말이야말로 가장 알맞은 수식어라고 봅니다. 


(기사링크)





방탄소년단이 포스트 케이팝인 이유

 


“BTS 콘서트에 참석한 다른 아티스트들 모습 잘 봤다”

“살면서 다 큰 성인들이 그렇게 소리지르는 모습은 난생 처음 봤다”   

“아시안 인베이젼! 뉴 비틀즈의 탄생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시상식에 등장한 지난 (미국 현지시간) 20일, 현지인들이 SNS에 남긴 말이다. 현지 미디어는 이제라도 BTS 열풍에 합류해야하나 조바심을 냈고, R&B 가수 갈란트와 모델 출신 방송인 타이라 뱅크스 같은 셀럽들은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때 BTS는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현상”이라며 거듭 강력한 지지를 표현했다. 빌보드 공연 이틀 전 발매된 정규 앨범은, 이 글을 쓰는 현재 한국가수 최초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1위 데뷔를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컴백과 함께 펼쳐진 이런 현상은 유의미한 변화의 시그널을 보낸다. 빌보드 시상식이나 엘렌쇼에서 방탄을 소개할 때면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라는 수식어가 여지없이 따라붙었다. 피치포크와 롤링 스톤 등 유력 음악지는 새 앨범에 대해 진지한 평과 함께 준수한 평점을 매겼다. 애플 뮤직 에디터는 앨범 프로필에 “케이팝의 경계를 부순 그룹”이라는 소개를 썼다. 아시아, 케이팝, 아이돌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수식어가 아니다. 


한편, 국내 언론의 경우는 케이팝 아이돌이 주류 음악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에 좀더 고무된 모습이다. 기사 제목에 ‘점령’ ‘정복’ 같은 단어가 유독 눈에 띄고 기자회견에서도 빌보드 차트 1위 가능성을 집요하게 묻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케이팝의 세계화’라는 국가주도 한류의 그림자를 다 떨쳐내지 못한 듯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지금의 현상은 정말 케이팝이 세계에 인정받은 결과인걸까? 


케이팝은 일반적으로 한국 가수 전체가 아니라 랩과 보컬,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한국 아이돌 음악을 카테고리화 하는 용어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팬덤 문화 역시 케이팝을 정의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십대를 위주로 한 팬층, 노래에 따른 집단적 응원구호, 자신의 가수를 기죽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조공문화, 전세계 그 어느 팬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투표화력, 홈마/팬캠/출근길사진/공항사진으로 대변되는 B컷문화, 사생팬 등이 그것이다. 방탄 역시 이런 케이팝 토양에서 탄생한 그룹이며, 그로부터 받은 수혜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나온 지 이틀밖에 안된 <Fake Love>가 빌보드에서 떼창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획사가 노래 발표와 함께 ‘응원법’을 동시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케이팝 가수의 개별적 퍼포먼스는 노래를 방해하지 않는 팬들의 적절한 응원구호와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러나 케이팝이 비록 글로벌한 서브컬쳐의 지위에 올랐을지언정 아직까지 국내외 주류 음악시장에서 진지한 음악으로 대접받지 못한 이유 역시 선명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기본적으로 십대 팬층의 구미에 맞춰 기획사가 만들어낸 공장형 아이돌이라는 점이다. 팬덤의 규모와 충성도에 따라 아이돌 수명이 결정되는 현재의 무한경쟁 시스템 안에서 케이팝 아이돌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일, 즉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활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내면 곧바로 월드 투어에 돌입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소위 ‘활동기간’ 동안 음악 순위방송과 팬사인회, 팬미팅, 예능, 인터뷰 같은 루틴을 숨막히게 감당해야한다. 


방탄 역시 이런 케이팝 루틴을 대부분 수행해왔다. 뭔가 한 끗 다르다 느꼈다면, 그건 그들이 음악적 완성도를 최우선 순위로 둔다는 사실일 것이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멤버들이 거의 전곡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한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방탄 새 앨범 CD를 스피커로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기술적 평은 할 수 없지만, 쎈 음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데도 마냥 귀를 때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풍성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보편적인 케이팝 앨범 후반작업의 수준을 뛰어넘어 레코딩과 믹싱 완성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방탄이 케이팝의 어떤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들의 팬덤 아미(A.R.M.Y.)의 양상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국내 포털의 방탄 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미 삼,사십대가 점령한지 오래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의 음원사이트 리스너 통계 역시 이,삼십대가 10대를 앞서고 있다. 해외 팬덤도 마찬가지다. 한 방탄 해외 팬베이스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즉 이십대가 팬 비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트위터의 #BTSisNotYourAverageBoyBand (“방탄은 당신이 생각하는 보통의 보이밴드가 아니다”) 라는 해시태그를 들어가보면, 10대부터 60대까지 방탄의 음악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는지, 어떻게 자신을 구원했는지 절절하게 고백하는 글로 넘쳐난다. 이번 빌보드를 위해 입국한 LA 공항에서 팬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에 (방탄을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을 묶고 일렬로 늘어서 방탄의 입국길을 안전하게 지켜준 #PurpleRibbonArmy 프로젝트는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마저 “믿기 힘든 일”이라며 감탄하게 했다.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팬들을 위해 세계 각국 언어로 위로를 전하는 심리전공자들의 모임(@BTS_AHC), 일회성이 아니라 시리아 등 세계의 고통받는 곳에 꾸준히 아미의 이름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단체(@OneinAnArmy)도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방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고, 미약하나마 이를 되갚아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이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아이돌 팬이라고 생각했던 집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건, 방탄의 새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에서 미국 힙합 가수 포스트 말론과 치열하게 경쟁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의 외국 팝가수 팬들 그중에서도 흑인팬들이 주축이 되어 방탄 신곡을 집단 스트리밍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StreamFakeLoveToEndTrumpsAmerica) 한마디로, 유색인종이 ‘트럼프의 징후’인 포스트 말론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는거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이 상징하는 징후적 음악이 득세하는 현재의 미국 음악계에서 방탄이 이를 깨뜨릴 유의미한 카운터파트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데 이게 만약 다른 케이팝 그룹이었다면 조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알다시피, 케이팝 내부의 인종주의적 혐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기라며 흑인 영어를 흉내낸다거나, 흑인 힙합에 대한 섬세한 문화적 이해없이 오로지 거기서 스웨그만을 취하는 등 케이팝 씬의 인종주의에 대한 무지는 해외팬들의 격분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다. 초창기에는 방탄도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해외팬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자 여기에 대한 솔직하고 구체적인 사과와 함께 확연한 자기 성찰이 뒤따랐다.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에 대해 호의적인 해외 문화권 특성에 힘입어, 팬덤 내부의 결속은 물론 방탄은 이전보다 더 크고 다양한 팬층을 흡수해 나갔다.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방탄소년단은 케이팝의 토양 위에 서있지만 동시에 이를 성큼성큼 뛰어넘는 중이다. 우울증과 정신건강, 한국에서 특히 터부시되는 주제를 음악을 통해 서슴없이 말하며 그래도 “넌 혼자 걷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방탄에 대해 전세계 팬들이 느끼는 애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방탄을 두고 “피곤한 얼굴. 어쩐지 나와 닮은 듯한 그늘. 우리 같이 살아내고 있다고. 천천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가자 말하는. 목적과 목표만 중요했던 날들의 끝과 함께 찾아온 우리의 아이콘”이라 말하는 어느 팬의 말은 그들에게 받는 위로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니 달콤하고 화려한 포장으로 일시적 탈출구를 제공해주던 케이팝을 벗어나 밀레니얼 세대의 맨얼굴이자 롤모델로 받아들여지는 방탄을 두고 포스트 케이팝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과한 시도가 아니다. 


케이팝에서 태어났으나 개별적인 아티스트리와 영향력으로 자신들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바라는 게 있다면, 국내 언론이 마치 올림픽 금메달 중계하듯 이들의 차트 성과만 조명하지 말고, ‘밀레니얼 세대의 맨 얼굴’로서 이들이 갖는 동시대적 의미에 대해 좀 더 준비된 비평으로 접근해주길 바란다. 또한 아티스트로서 이들이 갖는 잠재력이 충분한 여유를 갖고 펼쳐질 수 있도록 이제 케이팝 산업계의 소모적 루틴도 조금은 변할 때가 되지않았나 생각한다.  


Posted by 미와카주


<방탄소년단 팬덤, 세계 주류문화 질서를 뒤흔들다>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의 어마어마한 해외 인기를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곧잘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춤이 멋있어서, 얼굴이 잘 생겨서, 또는 SNS 시대의 수혜를 톡톡히 받아서라고. 


물론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방탄소년단에게 관심을 가지는 동기가 될 순 있지만, 서구 미디어가 한 목소리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헌신적인 팬덤”이라 평가하는 열정적인 방탄 팬덤의 행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서구에서 방탄이 이뤄낸 이제까지의 성공, 그리고 앞으로의 성공까지도 ‘전적으로 팬들 손에 달려있다’고 보는 게 현재 서구 미디어가 공유하는 시각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의 보이 밴드, 그것도 거의 모든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가수의 세계적인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앨범과 음원을 몇개씩 반복해 사들이고, 하루종일 음원을 스트리밍하며, 온갖 시상식에 엄청난 투표 화력을 쏟아붓는건 물론, 미디어와 라디오에 조직적으로 홍보를 하는 방탄 팬덤. 특히 해외 팬덤이 보여주는 열광과 헌신 대신,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일화를 먼저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이 일화의 트위터 원문은 @AskAKorean)



1997년 나는 한국에서 LA로 이민을 왔다. 


미국에 오기 전 영어 코스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ESL 수업을 듣지 않고 곧바로 10학년 정규수업에 편입하게 됐다. 그날은 생물수업을 두 번째로 듣는 날이었다. 수업시간에 퀴즈를 봤는데 생물 담당인 갤러허 선생님은 이제 막 전학을 왔으니 퀴즈는 안 봐도 된다고 했지만 어쨌든 시험지는 건네주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그 시험지를 마치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한다. 


‘광합성’에 대한 문제였다. 식물의 잎이 그려진 도표가 있었고, 그 잎으로 어떤 종류의 가스가 들어오고 무엇을 뿜어내는지를 쓰는 문제였다. 약 5분 정도 그 문제지를 쳐다보는 동안, 나는 좌절감으로 인해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광합성에 대한건 한국에서 7학년(주: 한국의 중학교 1학년)때 이미 배운 거였다. 나는 모든 답을 알고 있었다. 단, 그게 영어가 아니었을 뿐. 


이 시험이야말로 내가 새로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나는 모든 이들이 나같은 기분을 한번쯤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갑자기 멍청이가 되는 것 같은 기분.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약 5분후, 나는 답을 한국어로 적기 시작했다. 갤러허 선생님은 시험을 안 봐도 괜찮다 했지만 어쨌든 빈 답안지를 내긴 싫었다. 내가 갑자기 멍청이로 변한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이틀 후, 갤러허 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최고점은 만점을 받은 TK란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놀라서 내 시험지를 쳐다봤다. 한국어로 쓴 답안에 모두 채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어눌한 영어로) 선생님께 어떻게 채점을 매셨냐고 여쭤봤다. 그분은 내 답안지를 한국계 미국인인 수학 선생님께 보여 주였다고 했다. 그 수학 선생님도 한국어를 썩 잘하는 건 아니라서 한국어 사전까지 동원해서 내 답안지 채점하는걸 도와줬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이때 일을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자신의 학생을 위해 갤러허 선생님이 한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그 시험이 내 성적에 포함되지 않을거라 말했으므로, 그녀는 내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시험지를 채점한 바로 그 순간이 내 미국 이민생활의 행로를 바꿔놓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게 아니라는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되는 것,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영어를 배웠다.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내 졸업 연설은 마치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한 장면 같았다(주: 왕따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코미디영화). 횡설수설에 심한 외국인 액센트까지, 끔찍했다. 동급생들 표정도 황당해보였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단상에서 내려오라며 야유를 퍼붓지는 않았다. 


졸업 후 나는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로스쿨에 들어갔다. 지금 나는 변호사인 동시에 세상과 글로 소통하는 작가이다. 내가 영어로 쓴 글을 학생들에게 샘플로 보여준다는 작문 교수들의 말을 전해들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존 켈리(주: 백악관 비서실장)같은 멍청이가 비영어권 이민자는 미국에 동화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면, 나는 항상 갤러허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미국에는 아직 존 켈리 같은 사람보다는 갤러허 선생님 같은 사람이 더 많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제발 기억하길 바란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걸.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해외로부터 새롭게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새롭게 이 땅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를 바란다. 


바로 당신이, 누군가의 갤러허 선생님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주말 아침, 아직 잠에서 덜 깬 채로 트위터에서 이 글을 읽다가 나는 말 그대로 소리내어 울었다. 내용 자체가 인도주의적이기도 했지만, 열 살 무렵 내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2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막 마친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에 왔다. 지금이야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지만, 삼십여 년 전 그때 알파벳은 중학교나 가서야 배우는 거였다.


내가 살던 어배나(Urbana)엔 큰 대학이 있어서 아버지처럼 교환교수나 연구원으로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 동네에서는 그 자녀들과 한국어로 맘껏 뛰어 놀았지만, 학교에서는 달랐다. 한마디도 못하는 멍청이였다 나는.  


급식 시간이 내겐 악몽이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걸 알고 나를 괴롭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애들이 더 잔인하다. 디저트로 간만에 뭔가 맛있는게 나올때면, “너 이거 먹을거야? 안 먹을거지? 안 좋아하지?” 내가 틀린 대답을 할때까지 긍정문과 부정문을 섞어 다다다다 물어보는 애들한테 여러 번 후식을 뺏기곤 했다. 알겠지만 영어는 한국어와 긍정/부정 체계가 달라서 “안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걸 좋아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해선 안된다. 그럼 디저트를 뺏긴다.        


급식 시간 내내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간혹 다가오는 애들은 그렇게 놀리며 내 디저트를 뺏어가는 애들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내게 같은 반 애들 두엇이 다가왔다.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하고 있는데, 생글거리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예쁜 빨간색 하트 스티커였다. 설마 이걸 내게 주는건가? 하는데 손짓발짓 끝에 알아들은 말이 스티커를 살 생각 없냐는 거였다. 한참 고민 끝에 그래도 혹시나 이게 일종의 우정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스티커를 샀다. 


문제는 몇 시간 뒤 일어났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숙제에 잘 했다는 표시로 붙여주는 스티커가 없어졌다는 거였다. 바로 내가 산 그 스티커였다. 스티커 종이에서 막 하나를 떼어 노트에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눈길이 내게 쏠리고 숨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두가 내 손에 든 스티커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프도록 알 수 있었다. 나는 온 영혼을 다해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그 스티커를 사게 되었는지 내 짝꿍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보던 흑인 짝꿍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담임선생님에게로 갔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느낌상)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한 말은 잘 알겠어. 하지만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자”. 


아, 이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 아니면 귀찮아서든 뭐든 최소한 이 오명에서 나를 건져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 나는 그렇게 영어도 못하는 바보인 동시에 도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갤러허 선생님같은 분이 없었다. 그저 운이 없었다 해두자. 


길든 짧든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타언어권에서 순식간에 멍청이가 되는 느낌을 한번쯤은 맛봤을 것이다. 좀 더 머리가 큰 뒤 대학원 때문에 다시 미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토론 참여가 필수인 비평 수업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데만 시간을 다 보냈다. 말을 하면서 정리가 된다는 것은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 내가 몇시간 동안 만들어놓은 문장을 겨우 뱉으면 수업이 끝났다. 그동안 네이티브들은 별 통찰력도 없어보이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즐겁게 수업을 장악했다. ‘한국말로 했으면 니들은 다 죽었어’는 그저 마음의 소리일뿐, 언어의 장벽 앞에서 나의 지성은 무용했다. 1세계의 벽 앞에 선 제 3세계 인구의 서글픔이었다. 


방탄소년단 해외 팬덤을 관찰하면서 내가 참 흥미롭다 느꼈던 것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이런 좌절감이 역전돼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네이버 V앱의 <달려라 방탄> 같은 몇몇 컨텐트를 제외하고, 방탄의 대부분 컨텐트는 영어 자막이 없는 채로 나온다. 물론 채 얼마 되지 않아 자발적인 팬 번역가들 일명 ‘번역계’가 자막본을 내놓지만, 그 시간동안 타들어가는 팬들의 속마음은 이런 짤을 유행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방탄 멤버가 V앱에서 라이브 방송이라도 할라치면, 장장 1시간 가까이를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버텨야한다- 물론 그 순간에도 수억개의 하트와 수십만개의 댓글을 날리는걸 잊지 않는다. 라이브 방송처럼 이렇게 긴 컨텐트의 경우, 제대로 된 번역본이 뜰 때까지 이틀 내지 삼일이 걸릴 때도 있다. 


그뿐인가. 앨범이나 콘서트 소식 등 중요한 공지를 대부분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하는 기획사 때문에, ‘twelve hit phobia’ 즉 ‘열두시 땡 공포증’이라는 말이 외국 팬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돌았다. 한국 팬들이야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편안히 공지를 받을 수 있지만, 바쁜 아침 시간이나 한참 회사나 학교에서 일과 중인 외국 팬들에게, 이 한국시간으로 자정은 너무나 가혹한 타임라인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말로 노래하는 가수의 팬이 된다는 게 이런 거란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늘도 수백만의 외국 팬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한국 시간(KST)으로 설정해 놓는걸 잊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방탄의 해외 팬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기다림과 답답함을 벗 삼은 채 일상의 바이오리듬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언어와 시차의 위계가 역전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디 너희들이 당하니까 어떠냐? 우리 비영어권 출신의 괴로움을 이제 알겠지?“ 같은 고소한 마음이 내심 안드는건 아니지만, 나는 이 현상 이면에 훨씬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방탄소년단의 팬인 라프란즈 데이비스(@RafranzDavis)는 <MEDIUM>에 기고한 <한 케이팝 그룹이 어떻게 나를 장벽 너머로 이끌었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직업 때문에 전 세계의 교육자들과 교류했지만 한번도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때론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도 가르쳐봤지만,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 적이 없었다. 결국엔 그들이 영어를 배워 언젠가 나와 영어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BTS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장벽과 편견이 존재한다. 그런 장벽을 만날 때면, 마치 내게 있어 BTS 같은 존재가 나타나, 여러분이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1세계 시민으로서의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 없는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 됐을 때 겪는 이런 역지사지의 순간들은, 당혹감과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타 문화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준다. 


게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탄 팬덤에 깊숙이 들어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 노래 가사를 들으며 울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탄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오열하기 시작하는 외국 팬들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세계 평화는 정치가들 손에 달려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방탄의 팬 번역가들이 아무리 성실히 그리고 재빨리 번역을 한다 해도,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 답답함 그리고 한국어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의 공백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례로, 해외 팬들은 초창기 방탄의 스타일링이나 발언에서 흑인에 대한 미묘한 인종주의적 선입견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표시했다(이는 비단 방탄뿐 아니라 케이팝 전체에서 곧잘 발견되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멤버의 진솔하고도 구체적인 사과가 나오자, 서양권 문화의 특성상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고쳐나가려는 태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팬덤은 더욱 강력하게 결속되었다.  


문화와 문화가 감정적으로 서로 이어질 때의 감동. 게다가 세계 질서 아래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고 비주류의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주류 문화권 팬들의 태도에서 나는, 희망없는 세계에 불어오는 시원한 찬바람 한줄기를 느꼈다. 전지구적 주류문화 질서 아래서 앞으로도 나는 종종 ‘멍청이가 돼버린 기분’에 사로잡히겠지만, 최소한 세계의 한 켠에서는 문화 교차를 통한 ‘역지사지’, 그로 인한 타인에 대한 더 넓은 이해가 실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말이다.    


시작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였지만, 점점 서로의 문화와 언어에 새겨진 ‘차이’와 ‘같음’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도록 계기가 되어준 방탄소년단에 감사한다. 더불어, 곧 발매될 새 앨범 Love Yourself: TEAR의 세계적 성공을 전 세계 아미와 함께 기원한다. 


Teamwork Makes the Dream Work!   




PS: 이번 에피소드는 팬 아닌 일반인들이 좀 더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오마이뉴스 블로그 뉴스에 올렸습니다. 아래 위젯은 오마이뉴스에 연동되는 건데, 원고료는 안주셔도 상관없지만 추천을 많이 눌러주시면 아무래도 일반인 분들께 좀 더 노출이 되지 않을까요. 이게 다 방탄 홍보다 생각하시고^^






Posted by 미와카주


<번 더 스테이지: 아름다움은 언제나 과정에 숨어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몇 시간 후에 공개될 <번 더 스테이지>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번 더 스테이지>는 지난 2017년의 방탄 Wings 월드 투어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유튜브 레드를 통해 지난 4월부터 매주 1화씩 공개돼 왔다. 드디어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다).



다큐를 시작하는 1화에서 슈가와 RM은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수많은 콘텐츠와 영상을 통해 우리 모습을 팬들에게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도 실은 엄청 가리고 약점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좀 더 날 것의 우리 무대 뒤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다’라는걸 보여주고 싶어요”



날 것의 모습이라. 



V앱과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제공되는 수많은, 그야말로 다 보는게 불가능할 정도의 방탄 관련 콘텐츠들. 그걸 뛰어넘는 차별화된 솔직함을 보여주겠다는 얘기인가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리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영화 전공자로서 촬영과 편집의 원리가 얼마나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가동되는지 십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솔직함을 약점으로 인지하는 일부 팬들의 반발을 회사가 결코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남겨둔 지금, 고백하자면 나는 울었다. 


다큐가 너무 슬퍼서도, 격한 팬심의 발로도 아니고, 그저 매번 에피소드가 시작되기만 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삐져나왔다. 그리 오래 된 옛일도 아닌 불과 작년 투어의 무대 비하인드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울다니. 팬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난 어딘가 고장난걸까. 위기의 중년이 겪는다는 ‘고장난 수도꼭지 신드롬’도 아니고, 도대체 이 다큐의 뭐가 어떻길래 나는 울기씩이나 했을까. 다큐의 내용을 살펴보자. 




<번 더 스테이지>는 월드 투어 무대와 무대 뒤의 모습, 그리고 투어 사이사이 멤버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을 보여준다. 투어 도중 이들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싸가지고 온 장비를 호텔방에 풀어놓고 음악 작업을 하거나, 투어가 열리는 도시의 미술관이나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고, 유명하다는 핫도그를 사먹고, 바다에 가서 잠깐 난 짬을 만끽한다 (무대 동선에 대한 진과 뷔의 언쟁이 잠시 나오지만, 언제나 그랬듯 멤버 모두가 모여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으며 해결하는 전형적인 ‘방탄식 갈등 해결법’을 보여준다).  

 

다큐 에피소드 전반부마다 무대에서 공연 전 리허설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시퀀스가 있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리허설을 하는 멤버들은, 때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진지하게 디렉터와 무대 논의를 하고, 때론 서로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면서 무대와 무대 사이의 리허설 타임을 보낸다.  



그중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사이사이 멤버들이 빈 객석을 바라보는 어떤 찰나의 표정들이었다.     






이제 갓 이십대 초중반에 들어선 멤버들은, 자신들의 세계적 명성에 막 불붙은 시기에 시작된 투어의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무대가 주는 압박감과 두려움, 팬들에 대한 감사... 거기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을거다. 







멤버들의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텅 빈 객석 앞에 서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느닷없이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혔다. 


그건 마치, 이 모든 열광이 가라앉고 조명이 꺼졌을 때, 그러니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방탄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느낄 감정을 대리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열광과 갈채, 지난한 연습의 과정, 압박감과 성취감. 이 모든 걸 뒤돌아보는 방탄의 뒷모습을 미리 시간을 거슬러 몇십년뒤의 미래에서 이들과 함께 보고 있는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인간은 유한하다. 백년도 못되는 삶을 살다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이 유한함이야말로 인간을 매일 충만하게 살도록 부추기는 원동력이라는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명성 역시 유한하다. 방탄의 일거수일투족에 숨 넘어가고 죽고 사는 팬들의 열광도 때가 되면 맥주 위의 거품처럼 자연스레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명성 너머, 시대의 아이콘으로 무한히 각인된 이름들을 알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롤링 스톤즈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비틀즈가 그랬다. 서태지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방탄도 시대의 공기가 허락한다면 아마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방탄의 뮤직 다큐멘터리가 선보이는 세계는 기존의 전설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와 비교했을 때 사뭇 특이한 점이 있다. 일례로, 롤링 스톤즈의 투어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큐 역사에 남을 만큼의 반향을 일으켰다. 무대 위의 열광과 무대 뒤에서의 소동 및 개인사를 보여주는 그들의 다큐는 마약, 록큰롤, 프리 섹스가 만연했던 60년대라는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걸작으로 꼽힌다. 범상한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아티스트의 기행이 예술의 표식으로 통용되곤 하는 흐름은 여타 뮤직 다큐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번 더 스테이지>는 한 뼘 다르다. 투어 사이의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는 방법이래봤자 함께 모여 밥 먹고 수다 떨고 작업하고 게임하고 관광을 하는게 다다. 이런 모습은 아티스트의 남다른 면모를 강조해왔던 기존의 다큐의 방식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있다. 더할 나위없이 평범하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무언가가 반짝인다. 


신비화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저 나나 내 주변 친구들이 흔히 할 법한 일들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좀더 나아가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을 멤버들은 마치 짠 듯이 쏟아낸다. 열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그들의 일상은 지난한 연습과 자기 반성의 과정으로 채워져있다. 반짝이는 단 한순간의 열광과 환호성을 위해 그들은 매일을 마치 수도승처럼 자기 계발의 순간으로 채워넣는다.  



방탄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 피디는 방탄이 ‘친근한 이웃의 오빠’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친근한 옆집 애들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영웅. 그들의 그 ‘일상’이 어떤 피와 땀과 눈물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지 <번 더 스테이지>는 또 한번 증명해준다.            



그들의 커리어를 한 단계 도약시킨 2017년을 지나 2018년에 온 우리들. 우리는 <번 더 스테이지>를 통해 1년 뒤의 미래에서 그들의 과거를 목격하고 있다. 동시에 몇십년 뒤의 미래에 서서 지금 한창때의 방탄이 써나가는 서사를 다정하게 회고하는 마음으로 이 다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알고 있다. 이 반짝이는 무대 너머에서 그들이 얼마나 매일을 충실하게 피, 땀, 눈물 그리고 웃음으로 써나가고 있는지. 나의 이 노스탤지어는 너희의 충실한 오늘에 대한 감사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굴러갈 시대의 수레바퀴가 그들 편에 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Posted by 미와카주

<아미 팬덤의 자선 활동>




지난 5월 5일 새벽, 미국 ABC Eyewitness News Ch.7의 기자이자 앵커인 George Pennacchio가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를 언급하며 트윗을 하나 올렸다. 





- George Pennacchio 트윗



스타워즈 팬들의 자선 단체인 Force For Change가 하는 미국 유니세프 자선 미션에 방탄소년단 팬들도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미션의 내용은 #Roar For Change 라는 해시태그를 1번 올릴 때마다 1달러씩 유니세프에 기부돼 굶주린 어린이들을 돕게 되는 것이다. 



글이 올라온 즉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히 해시태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향후 2년간 음반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LoveMyself #EndViolence 프로젝트를 현재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기도 해서 아미들 역시 기부에 적극적으로 동참 의지를 보였다. 


(방탄소년단의 행보와 발맞춰 아미들의 자선활동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각 나라의 아미들이 자국에서 다양한 자선 활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OneInAnArmy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발족, 시리아 등지에서의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원래 이 스타워즈 기부미션은 5/25일까지 20여일 동안 백만 달러를 목표로 발족된 프로젝트였는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국의 아미가 참여하자마자 5시간만에 백만 트윗이 훌쩍 넘어 순식간에 기부 상한선을 넘어섰다. 아미에게 처음 이 미션을 제안한 ABC 방송국 캐스터조차도 이 상황에 깜짝 놀라 다음 같은 트윗을 올렸다.



- George Pennacchio 트윗


 

“이런 팬들을 가진 방탄소년단은 정말 행운아네요. 여러분께 진실한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곧이어, 이 미션을 주관한 스타워즈 공식계정도 백만달러 기부미션을 순식간에 달성하는데 동참해준 아미에게 감사하는 트윗을 올렸다.




- @starwars 트윗



스타워즈 공식계정의 트윗 아래 달린 전세계 아미들의 멘션은 찡한 데가 있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고, 세계를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준 게 다름아닌 방탄소년단이었다며 그들은 모든 공을 방탄소년단에게 돌렸다. 



여기서 하나 재밌는건, 미국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 RM이 밝힌 스타워즈와 방탄과의 연관성이다. 




-  Rolling Stone  인터뷰 중에서




나온지 몇십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타워즈나 마블의 세계관처럼 자신들도 방탄의 세계관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거였다. 이런 그들의 소망은 2015년에 나온 화양연화 앨범의 세계관이 2018년 현재까지 이어짐으로써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를 BU(방탄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방탄 콘텐트 속에 녹여 현재까지 4년여 동안 일관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팬들은 새로운 콘텐트가 나올때마다 일명 ‘궁예’(짐작)를 통해 이 내용이 방탄 세계관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매번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팬덤의 자선활동은 국내 팬덤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서태지 팬덤 같은 경우는 지속적인 자선, 봉사활동은 물론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공론장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혹자는 팬덤이 벌이는 자선활동이 단순히 자신의 가수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비나 걸면서 아무 것에도 기여하지 않는 것보단 첫 동기야 어찌됐든 실질적 도움을 주기위해 움직이는 팬덤의 행위가 이 세계에 이바지하는 바가 많다 본다.        



방탄소년단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아미들이야말로, 어쩌면 방탄소년단이 세상에 내놓은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Posted by 미와카주

<아미, 미국 라디오를 뚫다>



(+수정)



빌보드는 매주 수십개의 차트 순위를 발표한다. 


빌보드 차트의 특징이라면 미국내에서의 소비량, 즉 미국에서 발생한 디지털 스트리밍, 디지털 다운로드, 앨범 구매, 라디오 선곡 횟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만 차트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 소비자들이 듣고 사줘야 올라갈 수 있는게 바로 이 빌보드 차트다. 그중 메인차트라 할 수 있는게 싱글차트인 HOT 100과 앨범차트인 Billboard 200이다.  


간혹 한국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데, 그건 대부분 메인 차트가 아닌 월드 차트, 즉 비영어권 음원/음반들을 대상으로 매겨지는 차트다. 


한국 가수중 메인 차트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큼의 의미있는 성적을 거둔 가수는 아직까지 단 둘 뿐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싸이의 경우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에 31주간이나 머물렀고 후속으로 나온 2곡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메인 싱글차트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DNA>로 4주 연속, <Mic Drop Remix>로 10주 연속 메인 싱글차트에 머물렀다. 나온지 8개월 된 Love Yourself: HER 앨범은 아직까지도 메인 앨범차트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무려 28주째다.


<강남 스타일>은 입소문을 타고 전무후무한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 히트를 쳤다. <강남 스타일>의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최고 기록은 2위였다. 그 정도 파급력이면 한번쯤 1위를 할 법도 한데 끝내 1위로 못 올라선 이유가 바로 라디오 선곡 횟수 때문이었다. 


메인 싱글차트 집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라디오 플레이에서 미국 팝 가수들에 밀린 것이다. 그만큼 미국 라디오는 외국어로 된 노래에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팬들은 이 라디오를 뚫기위해 2016년 무렵부터 노력해왔다. Wings 앨범 발매 시기에 #GetBTSontheRadio 라는 프로젝트가 라디오 공략에 먼저 나섰고, Love Yourself: HER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라디오를 두드렸다. 그 선봉에 트위터 팬계정인 @BTSX50States가 있었다. 





- BTSX50States 홈페이지 소개




BTSX50states는 미국 50개주의 방탄 팬사이트 연합으로 라디오 홍보, 풀뿌리 캠페인, 광고,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내에 방탄소년단을 홍보해왔다. 그중에서도 라디오는 빌보드 차트에 갖는 영향력을 차치하고라도 미국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홍보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들은 라디오를 뚫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BTSX50states 산하에 있는 미국 서부, 남동부, 남서부, 중서부, 북동부 등 각 지역 아미들은 자신의 지역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영향력이 큰 방송국별로 분류하고 디제이들을 접촉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중, 라디오 홍보를 하던 한 아미의 글이 한국 아미들 사이에 번역이 되어 돌았다. 







처음 방탄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을 때 이들은 면전에 대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을 부지기수로 당했다. 


노래를 틀어주겠다 약속한 디제이 말만 믿고 몇시간씩 기다리는건 예삿일이었고, 대놓고 “우리는 ‘진짜’ 노래만 튼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작한 일이지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었죠. 그냥 내가 텔레마케터다 생각하고 계속 전화를 하는 수밖에요” 




BTSX50States는 디제이에게 전화를 걸 때, 그들이 방탄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의 수를 세심하게 나눠 방탄을 소개하는 응대 메뉴얼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



- BTSX50States 디제이 응대 메뉴얼



이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라디오 디제이들이 하나 둘 방탄의 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의 노력을 몇 년간 지켜본 디제이 중 어떤 이들은 결국엔 방탄의 열렬한 지지자, 즉 아미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지난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기간 중 엘렌쇼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아미들의 정성에 감복해 스스로 아미가 돼버린 라디오 디제이 한명의 트윗 메시지로 시작됐다. 



“당시 엘렌 쇼의 프로듀서가 LA 킹스 하키팀 팬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프로듀서에게 트윗 메시지를 보냈죠. ‘킹스도 BTS가 당신 쇼에 출연하는걸 원한다’고요” 메시지를 받은 엘렌 쇼 프로듀서는 킹스 팀 선수에게 그 메시지를 보여줬고, 그 선수는 “출연시키지 그래?”라고 답했다. 


AMA 무대를 마친 방탄은 정확히 일주일 뒤 엘렌 쇼에 출연했고, 더불어 키멜 쇼, 레잇레잇 쇼까지 3대 공중파 방송국 메인 토크쇼 모두를 섭렵했다. 


(라디오 홍보 활동 중 에피소드는 각주의 기사를 참조한 것임)[각주:1]



미국 아미들의 이런 노력과 방탄의 미국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상승하자, 라디오에서 방탄의 노래가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미들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디제이들에게 보냈다. 차 안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라디오에 나오는 방탄의 노래를 들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미들의 영상을 받아본 디제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방탄 노래를 듣는 소비자층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는 더 많은 선곡 횟수로 이어졌다. 


한번이라도 방탄의 노래를 틀어준 디제이들은 그 지역 아미들로부터 꽃다발이나 디저트와 함께 정성스러운 카드를 받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각국에서 수많은 디제이들이 카드가 동봉된 아미의 소포를 받았다. 


카드를 받은 디제이들은, 수많은 가수의 팬들을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의 가수에 대해 열정적인 팬덤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BTSX50States가 주도하는 라디오 홍보가 주효했던 이유는, 이들이 지역 디제이와의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신청할 때도 항상 예의를 갖춰 부탁하고, 선곡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기민하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지역 디제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노래를 신청만 하고마는게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방송을 듣는 지역 청취자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영상과 사진을 보내 확인시켜주는 걸 잊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캠페인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팬계정 관리자 대다수가 십대가 아닌 직업을 가진 성인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인한 바로는 BTSX50States뿐 아니라 다수의 해외 방탄 팬베이스 관리자들 중에 삼사십대의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나이 어린 팬들을 도와 프로젝트를 조직하고,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부드러운 접근으로 음악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대하는 이들의 손끝에서 방탄 해외 알리기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팬은 프로모션을 가장 열정적으로, 그것도 무보수로 하는 존재들이라고. 열정에 조직력까지 더해진 방탄 팬덤은, 음악계 인사들에게 신기함을 넘어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오늘날 방탄의 서양 내 인지도의 많은 부분이 무보수 프로모터, 바로 아미들의 공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 Chang Dong-Woo, Yonhap News Agency, 2017/12/22 [본문으로]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