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고리아

[승리호]의 시각적 효과에는 손을 들어주지만 내러티브는 실망스럽다는 평을 많이 접하고 이 영화를 봤다. 전투장면을 비롯한 미래 기술의 형상화를 보여주는 시각 효과는 내가 보기에도 어색함 없이 썩 만족스럽다. 그런데 내러티브는 그렇게 박하게 점수를 줄만큼 실망스러운가? 글쎄. 나는 그닥 거슬리지 않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승리호] 같은 (일종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를 만들 때 여러 고려해야 할 포인트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마도, 아드레날린을 상승시키는 우주 전투장면, 우주라는 공간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또 갈등 구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이 될 듯하다.

 

조성희 감독의 전작인 [짐승의 끝]은 파국의 세계를 잠식한 폭력을 언급할 때, 영화의 신화적 분위기 그리고 식상하지 않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파국의 공간성 때문에 늘 일순위로 참조하게 되는 영화다.

 

그에게 있어 공간은 '프로덕션 디자인이 개입되어야 하는 영화적 캔버스'라는 일차원적 역할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상상이 싹트는 장소성을 지닌다. [짐승의 끝]에서도 [탐정 홍길동]에서도 그랬다. 탈역사적 공간을 이만큼 임팩트있게 끌어내는 감독이 없을 정도다.

 

[승리호]의 주된 서사의 배경인 우주 공간은 우주시대 있는 자들의 낙원인 UTS 궤도/궁극적 이주지인 화성 vs UTS 비시민들이 떠도는 궤도 바깥 공간/게토화된 지구의 대비를 여실히 볼 수 있게 설정되어 있어 일종의 정치적 statement로 작용한다.

 

세부적으로는 낙원의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장과 청소부들이 활약하는 우주선 내부가 집중적으로 보여지는데, 청소부들의 우주선 즉 승리호 내부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흔히 최신식의 매끈한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설정되곤 하는 것과는 다르게, 마치 노예들의 고된 육체 노동으로 전진하는 대항해 시대의 함선처럼 보인다(물론 수백의 노예 대신 전직 마약상 박씨의 일당백 노동으로 커버되긴 하지만).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걸핏하면 고장 나는 이 우주선 공간은 영화에 묘한 현실성을 부여해주는 효과가 있다.

 

[늑대소년]부터 시작된 그의 상업영화 여정에서 주인공은 안티히어로, 어떻게 보면 신념 따위 없는 현실 밀착형 인물로 제시된다. 박보영, 이제훈과 송중기가 모두 그렇다. 그들에게 있어 서사 진행 중 만나게 되는 '아이'(또는 아이같은 늑대)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이제훈을 들었다놨다 하던 말순이의 영악함이 [승리호]에서는 승리호 크루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꽃님이의 천진함으로 변모했을 뿐, '아이'가 신념 없는 인물들에게 신념을 갖게 하며 이로 인해 극을 전진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는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거기다 그 어느 과학자도 권력자도 해적도 도달하지 못한 지점을, 나노 기술을 체화한 '아이'가 자연스레 실행한다는 설정은 구세대가 개인적 원한과 잘못된 신념으로 자멸한다면 새로운 세대는 그 어느 어른보다 훨씬 넓은 관용으로 그들을 변화시킨다, 라는게 조성희 감독의 세대론인가... 왠지 곱씹어보게 된다.

 

사이버펑크 스페이스 오페라 SF 장르 영화로서, 매우 급진적인 주제의식과 철학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그렇게까진 아니라고 하겠지만, 조성희의 세계관의 우주 판본으로서 공간에 대한 정치적 시각화와 기술을 일체화한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 그리고 아드레날린을 펌핑하는 전투씬 만으로도 일정 정도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싶다.

 

ps: 덧붙이자면 [탐정 홍길동]에서 내 모공에 소름을 오소소 일으켰던 씬이 대나무 숲인지 뭔지 마을 숲에서 위장을 벗어던진 홍길동 일당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던 씬이었는데, [승리호]에서도 비슷한 소름 돋는 씬이 있었다. 우주선을 순식간에 생분해해서 갉아먹는 나노봇이 파괴가 아닌 생성과 창조의 모멘트로 돌변하며 우주선을 보호하던 씬. 내가 GNR(유전자/나노/로봇) 기술의 미래에 너무 심취해있어 그런지 몰라도, 나노기술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는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장면이었음. 넘나 초월적으로 아름다워 살짝 눈물 찍.

Posted by 미와카주

인류는 이 땅에 문명을 일구었으나 역설적으로 그 문명으로 인해 망해갈 존재들이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를 비롯해 21세기 들어 주기적으로 일상을 흔들어놓는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을 지켜보면서 재앙의 근원은 문명과 모더니티 그리고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다는 학자들의 말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재앙 혹은 파국은 현대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가장 최전방에 있는 영화에서 무척이나 알뜰하게 써먹고 있는 소재다.자본주의의 파국조차도 자본주의적 생산에 이용되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문화라는게 기본적으로 당대의 무의식적 감정 구조를 드러낸다고 볼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이 파국적 감정은 어느 정도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이루는 서사는 기본적으로 멤버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와 갈등의 내용(교육시스템, 경쟁, 청춘의 방황, 자아의 흔들림)을 좀 더 서사화된 형태의 가상적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식으로 구사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Map of the Soul 앨범 시리즈부터는 모티프가 된 융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오브제들, 즉 그리스로마 신화와 니체의 사상에서 영향받은 모티프들이 뮤직비디오와 공연 구성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어둠의 상징인 포도와 뱀의 형상 같은 것들 말이다.

 

 

<ON> 역시 Map of the Soul 시리즈 앨범인 "7"의 타이틀 곡이니만큼 신화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무수한 상징들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폐허가 된 황무지, 화살을 맞고 죽어간 사람들과 비둘기, 노아의 방주, 거대한 벽이 가로막은 지평선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세팅의 분위기는 다름아닌 <매드 맥스>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틱 영화의 한 장면이다.

 

포스트 아포칼립틱 영화는 파국으로 인해 문명이 멸망한 뒤 원시적으로 돌아간 세계와 그속의 군상들을 그리는 영화로, 이런 종류의 영화 속에서는 늘 구원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어떻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알다시피,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 Map of the Soul:7은 융 철학에서 빌어온 그림자(shadow)와 자아(ego) 사이의 혼란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매우 개인적인 방탄소년단 자체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리부트하는 이번 앨범 속 곡들은 7년을 걸어오면서 맞닥뜨린 개인적 파국과 혼란 그리고 그런 혼란조차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다짐들이 담겨있다.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철학적 문제들을 가상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파국과 포스트 아포칼립틱한 배경은 이런 문제를 메타적으로 다루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세팅이었을 것이다. 7년차 그룹으로서 어떻게 자신들의 내면과 화해함으로써 영혼의 구원에 이를 것인가를 다루는 데 말이다. 

 

마치 <월드워Z>에서 좀비떼를 가로막기 위해 세운 거대한 벽 같은 곳이

폐허가 된 세계에서 만신창이가 된 멤버들과 사람들 눈앞에서 열리고

이윽고 황무지를 건너가 깍아지른듯한 태고의 절벽을 천천히 오르는 멤버들. 

 

내면의 고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새로운 영웅 서사로 재탄생한다. 

(약간 게임 영웅 서사 같다는 생각은 빅히트가 게임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지도)

Posted by 미와카주

방탄소년단 팬덤비평서인 저의 책 <BTS와 아미 컬처>가 7/9일 커뮤니케이션북스를 통해 출간됩니다. 이제는 서로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BTS/아미 현상을 팬덤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기록한 ‘대중적 비평서’이자, 문화연구자이자 팬으로서 지난 2년간 아미로 함께 웃고, 울고, 살았던 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책에도 나오듯 문화적/사회적/정치적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시대의 팬덤문화로서의 아미를 만들어주신 모든 개인팬들, 팬베이스, 그리고 기꺼이 인용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러 아미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책의 내용과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서문 발췌와 목차 그리고 추천사를 올리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할까 합니다. 

 

1. 서문 및 목차

 

"이제껏 방탄소년단이 이뤄낸 일들에는 그 어느 것 하나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이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방탄이 내딛는 모든 행보가 곧 한국 대중음악계의 역사가 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방탄이 이처럼 경이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으로 전세계 언론이 한결같이 지목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팬덤인 아미(A.R.M.Y.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다. 방탄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방탄이 음악에 부여한 메시지를 체화하고 열렬히 전파하는 아미가 보여주는 강력한 글로벌 결속력은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가 그 대상에 대해 신념에 가까운 열렬한 감정을 공유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다. 방탄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아미라는 취향의 공동체. 이 책은 취향의 공동체가 가지는 가장 열렬한 형태의 결과물인 아미를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BTS와 아미 컬처>가 조망하는 것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이라는 일종의 상상적 공동체인 아미가 어떻게 자신들과 기존 K팝 문화 사이에 인식적 거리를 만들고 실제적인 팬 활동으로 글로벌 주류 음악계에 방탄의 자리를 공고히 해 나가는가 하는 과정이다. 특히 아미가 문화 권력을 가진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어떻게 타협하고 교섭하면서 방탄소년단의 문화적 신분을 만들어 내는지 관찰한다. 이런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아낸 이 책의 정체성은 비평적 이론서라기보다는 아미라는 팬덤의 역동이 동시대 문화 지형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포착하는 일종의 아카이브적 기록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미에게는 그들의 행적에 대한 정리된 기록물로, 아미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는 “아미 본격 해부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책은 아이돌 팬덤에 대한 비평적 담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팬덤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평가를 좌우하며 이를 둘러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빠부대’, ‘빠순이’ 같은 멸칭, ‘어리고 철없는 여자애들의 문화’라는 편견어린 시선이 따라붙는 아이돌 팬덤. 이들에 대한 여전한 무시와 편견은 여성, 청소년, 소비문화에 대한 사회의 경직된 시선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 아무쪼록 이 책이 목표로 하는 팬덤 내부의 역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아이돌 팬덤에 붙은 성급한 오명을 제거하고 사유를 동반한 깊이 있는 비판과 평가를 불러오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카-팬인 나를 ‘아미’라는 열광적이고 역동적인 세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 아미들에게 문화연구자인 헨리 젱킨스(Henry Jenkins)의 말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가 팬덤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팬덤 안에서 배운 것이다” "

 

목차 및 보도자료 링크- http://commbooks.com/도서/bts와-아미-컬처/

 

2. 애정어린 추천사를 써주신 김창남 선생님과 이지영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아미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애정 어린 비평서다. 문화연구자이자 방탄의 열성 팬이기도 한 저자는 방탄과 아미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 성장하고 진화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정직하게 보여 준다. 그 과정은 때로 놀랍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_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에까지 등장한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문화적 주체로서의 소비자인 팬덤 아미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아미를 분석하고 있다. 방탄을 전 세계에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만든 아미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아미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구체적인 통찰을 준다. 
_ 이지영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

 

ps: 이 책의 수익의 5%는 유니세프와 BTS가 함께하는 Love Myself 캠페인에 기부됩니다.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