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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미국 라디오를 뚫다>



(+수정)



빌보드는 매주 수십개의 차트 순위를 발표한다. 


빌보드 차트의 특징이라면 미국내에서의 소비량, 즉 미국에서 발생한 디지털 스트리밍, 디지털 다운로드, 앨범 구매, 라디오 선곡 횟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만 차트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 소비자들이 듣고 사줘야 올라갈 수 있는게 바로 이 빌보드 차트다. 그중 메인차트라 할 수 있는게 싱글차트인 HOT 100과 앨범차트인 Billboard 200이다.  


간혹 한국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데, 그건 대부분 메인 차트가 아닌 월드 차트, 즉 비영어권 음원/음반들을 대상으로 매겨지는 차트다. 


한국 가수중 메인 차트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큼의 의미있는 성적을 거둔 가수는 아직까지 단 둘 뿐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싸이의 경우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에 31주간이나 머물렀고 후속으로 나온 2곡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메인 싱글차트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DNA>로 4주 연속, <Mic Drop Remix>로 10주 연속 메인 싱글차트에 머물렀다. 나온지 8개월 된 Love Yourself: HER 앨범은 아직까지도 메인 앨범차트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무려 28주째다.


<강남 스타일>은 입소문을 타고 전무후무한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 히트를 쳤다. <강남 스타일>의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최고 기록은 2위였다. 그 정도 파급력이면 한번쯤 1위를 할 법도 한데 끝내 1위로 못 올라선 이유가 바로 라디오 선곡 횟수 때문이었다. 


메인 싱글차트 집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라디오 플레이에서 미국 팝 가수들에 밀린 것이다. 그만큼 미국 라디오는 외국어로 된 노래에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팬들은 이 라디오를 뚫기위해 2016년 무렵부터 노력해왔다. Wings 앨범 발매 시기에 #GetBTSontheRadio 라는 프로젝트가 라디오 공략에 먼저 나섰고, Love Yourself: HER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라디오를 두드렸다. 그 선봉에 트위터 팬계정인 @BTSX50States가 있었다. 





- BTSX50States 홈페이지 소개




BTSX50states는 미국 50개주의 방탄 팬사이트 연합으로 라디오 홍보, 풀뿌리 캠페인, 광고,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내에 방탄소년단을 홍보해왔다. 그중에서도 라디오는 빌보드 차트에 갖는 영향력을 차치하고라도 미국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홍보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들은 라디오를 뚫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BTSX50states 산하에 있는 미국 서부, 남동부, 남서부, 중서부, 북동부 등 각 지역 아미들은 자신의 지역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영향력이 큰 방송국별로 분류하고 디제이들을 접촉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중, 라디오 홍보를 하던 한 아미의 글이 한국 아미들 사이에 번역이 되어 돌았다. 







처음 방탄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을 때 이들은 면전에 대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을 부지기수로 당했다. 


노래를 틀어주겠다 약속한 디제이 말만 믿고 몇시간씩 기다리는건 예삿일이었고, 대놓고 “우리는 ‘진짜’ 노래만 튼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작한 일이지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었죠. 그냥 내가 텔레마케터다 생각하고 계속 전화를 하는 수밖에요” 




BTSX50States는 디제이에게 전화를 걸 때, 그들이 방탄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의 수를 세심하게 나눠 방탄을 소개하는 응대 메뉴얼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



- BTSX50States 디제이 응대 메뉴얼



이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라디오 디제이들이 하나 둘 방탄의 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의 노력을 몇 년간 지켜본 디제이 중 어떤 이들은 결국엔 방탄의 열렬한 지지자, 즉 아미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지난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기간 중 엘렌쇼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아미들의 정성에 감복해 스스로 아미가 돼버린 라디오 디제이 한명의 트윗 메시지로 시작됐다. 



“당시 엘렌 쇼의 프로듀서가 LA 킹스 하키팀 팬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프로듀서에게 트윗 메시지를 보냈죠. ‘킹스도 BTS가 당신 쇼에 출연하는걸 원한다’고요” 메시지를 받은 엘렌 쇼 프로듀서는 킹스 팀 선수에게 그 메시지를 보여줬고, 그 선수는 “출연시키지 그래?”라고 답했다. 


AMA 무대를 마친 방탄은 정확히 일주일 뒤 엘렌 쇼에 출연했고, 더불어 키멜 쇼, 레잇레잇 쇼까지 3대 공중파 방송국 메인 토크쇼 모두를 섭렵했다. 


(라디오 홍보 활동 중 에피소드는 각주의 기사를 참조한 것임)[각주:1]



미국 아미들의 이런 노력과 방탄의 미국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상승하자, 라디오에서 방탄의 노래가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미들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디제이들에게 보냈다. 차 안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라디오에 나오는 방탄의 노래를 들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미들의 영상을 받아본 디제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방탄 노래를 듣는 소비자층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는 더 많은 선곡 횟수로 이어졌다. 


한번이라도 방탄의 노래를 틀어준 디제이들은 그 지역 아미들로부터 꽃다발이나 디저트와 함께 정성스러운 카드를 받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각국에서 수많은 디제이들이 카드가 동봉된 아미의 소포를 받았다. 


카드를 받은 디제이들은, 수많은 가수의 팬들을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의 가수에 대해 열정적인 팬덤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BTSX50States가 주도하는 라디오 홍보가 주효했던 이유는, 이들이 지역 디제이와의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신청할 때도 항상 예의를 갖춰 부탁하고, 선곡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기민하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지역 디제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노래를 신청만 하고마는게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방송을 듣는 지역 청취자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영상과 사진을 보내 확인시켜주는 걸 잊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캠페인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팬계정 관리자 대다수가 십대가 아닌 직업을 가진 성인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인한 바로는 BTSX50States뿐 아니라 다수의 해외 방탄 팬베이스 관리자들 중에 삼사십대의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나이 어린 팬들을 도와 프로젝트를 조직하고,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부드러운 접근으로 음악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대하는 이들의 손끝에서 방탄 해외 알리기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팬은 프로모션을 가장 열정적으로, 그것도 무보수로 하는 존재들이라고. 열정에 조직력까지 더해진 방탄 팬덤은, 음악계 인사들에게 신기함을 넘어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오늘날 방탄의 서양 내 인지도의 많은 부분이 무보수 프로모터, 바로 아미들의 공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 Chang Dong-Woo, Yonhap News Agency, 2017/12/22 [본문으로]
Posted by 미와카주

<방탄소년단의 일급 프로모터, 아미> 




전세계 그 어떤 팬덤보다 열정적인 투표 화력과 홍보활동으로 자신의 가수를 지원사격하는 것은 대다수 K팝 팬덤이 공유하는 특성이지만, 그중에서도 아미의 접근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다. 목표하는 지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사실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국내 아이돌 그룹 중 방탄의 입지가 독보적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데뷔 해인 2013년부터 빌보드와 AMA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2017년에 이르기까지, 방탄 팬덤은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보다 강력했다. 방탄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 피디도 방탄의 인기가 해외에서 역수입된 측면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 당시 해외 팬들은 자국에서 방탄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다. 방탄의 국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팬들은 멜론 같은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 계정을 만들어 방탄 곡을 스트리밍 하거나, MAMA 등 국내 시상식 투표참여를 위해 단체로 계정을 만들고 앱을 깔았다. 한마디로 해외 팬덤이 국내 팬덤을 도와 함께 방탄의 국내 입지를 만들어간 것이다. 방탄의 국내 인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글로벌 팬덤은 이제 방탄을 K팝 아이돌이 아닌 국제적인 아티스트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런 결집력이 폭발한 것이 바로 2017년 빌보드 시상식이었다. 




당시 탑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 후보로 오른 방탄을 빌보드 시상식에 세우기 위해 전세계 아미가 하나가 되어 무서운 응집력으로 투표에 올인했다. 결국 투표에서 방탄은 3억표 이상을 득표했고, 6년 연속 이 상의 주인공이었던 저스틴 비버는 2천만표를 웃도는 데 그쳤다. 해외 팬들의 ‘빌보드에서 방탄 알리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서 시상식이 열리는 라스베가스로 팬들이 몰려들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방탄소년단을 직접 보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들이 빌보드 시상식에 참석할 때 그 뒤를 어마어마한 팬덤이 받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작열하는 5월의 라스베가스 태양 아래 몇십 시간을 지치지않고 방탄의 노래를 부르며 기다린 팬들은 마침내 시상식장에 입성하는 방탄소년단을 향해 어마어마한 함성을 질러댔고, 이를 본 미국의 미디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비단 시상식장 입구뿐만 아니라 시상식장 내부도 아미들로 가득 채워졌다. 방탄소년단이 수상을 하자 온 시상식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참석자들, 그리고 미국 매체의 눈이 방탄소년단에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빌보드에서의 이 같은 열광은 아직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해 11월, 방탄은 국내 아이돌 최초로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무대에 섰다. 내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도 바로 이 시상식 무대를 보고서였다. 방탄의 무대가 펼쳐지는 시상식장 곳곳에서 공식응원봉인 아미밤(ARMY Bomb)을 들고 한국어 떼창을 하는 외국 팬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한 광경으로 다가왔다. 흥미가 생겨서 찾아본 그날 공연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들을 보면서, 애초의 신기함은 점점 경악스러움으로 변해갔다. 시상식 현장에서 또는 거실 TV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방탄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서양 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노래가 나오기 전부터 멤버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외치는 팬,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 팬, 기쁨을 주체 못하고 “Take the world!”(세계를 정복해버려) 하며 TV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팬. 방탄의 미국 TV 데뷔를 지켜보는 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 마음만은 하나였다. 




바로 방탄이 세계적 무대에 선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 대체 자기 고향 사람도 심지어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동양의 작은 나라 출신 가수가 유명 시상식 무대에 선 게, 그들이 이렇게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인가. 그날 그렇게 호기심과 이상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방탄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결국엔 열혈 팬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어떻게 보면 다 그날의 아미들이다. 




대체 방탄소년단이란 그룹이 뭐가 어떻길래 다들 저렇게 열광하는걸까? 이 궁금증은 미국의 미디어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에 주목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를 위해 LA 공항에 도착했을 때 팬들의 반응을 보고, 엘렌 쇼의 호스트인 엘렌 드제너러스는 “마치 비틀즈가 미국에 왔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방탄소년단이 미국 시장에 눈도장을 찍게 만든 가장 확실한 패는 바로 미국 아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열광이었다.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바로 가장 효과적인 프로모션이 되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미와카주

<K팝 투표문화의 명암>


 


K팝 팬문화를 이야기할 때 늘 거론되는 것들 중에 단체 응원구호, 가수 홍보를 위한 국내 및 해외 광고판 계약, 그리고 열정적인 투표 화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 ‘투표 화력’이라는게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가수의 기록을 곧 팬인 자신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팬 문화가 존재한다. 좀 더 산업적으로 접근하면, 군대와 나이 그리고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아이돌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한국 가요계에서 기록은 곧 아이돌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척도가 되곤 한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 투표에 대한 무한 경쟁이 국내 시상식들에 의해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표 앱을 살펴보면 인기 투표에 필요한 투표권을 얻기 위해선 30초짜리 광고를 보거나, 게임이나 미심쩍은 금융 앱을 다운받아야 한다. 이도 저도 다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유료 투표권 즉 돈을 주고 투표권을 사는 옵션도 있다. 



처음엔 다들 차분히 광고를 보고 얻은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막판 순위 경쟁이 치열해지면 팬덤 대부분이 울며 겨자먹기로 현질(유료 투표권을 사는 행위)에 돌입하게 된다. 결국 인기상은 종종 누가 더 많은 현금을 지르는가로 결정되곤 한다. 그럼 팬들이 유료 옵션을 거부하면 되지 왜 돈을 내고 호구 인증을 하나 싶겠지만, 승부가 박빙을 달릴 때 유료투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몇시간 후 마감되는 투표가 불과 몇백표 차이로 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이제껏 해온 투표가 아까워서라도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유료 투표권을 사게 되는게 사람 심리다. 



유료 투표 옵션은 바로 이런 팬심을 악용해 일부 국내 시상식들이 자행하는 꼼수다. 아직까지 외국 시상식에서 한번도 유료 투표 옵션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대체 국내 시상식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시스템을 공공연하게 운용하는지, 또 이 문제에 제대로 칼을 대는 언론사는 왜 없는건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해마다 시상식 철만 되면 은근슬쩍 유료 투표 옵션을 집어넣는 국내 시상식의 행태는 아이돌 시장 생태계를 교란시킬 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덤 대부분이 십대로 구성된 상황에서 소비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어려운 미성년 아이돌 팬을 현금지급기 취급하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다. 



한편 K팝이 한류로 인기를 끌다보니 국내 시상식에도 ‘한류 인기상’처럼 외국팬들이 직접 투표하는 부문이 생겨났다. 이런 한류 인기상은 당연히 100% 외국팬들에 의해 결정된다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해외 팬덤이 크지 않은 팬덤은 국내팬들이 VPN(Virtual Private Network)으로 IP를 우회해 해외용 투표앱을 깔아 투표하는게 부지기수다. 어떻게든 자기 가수에게 상 하나라도 더 안겨주고 싶은 팬들이 고안해낸 일종의 변칙 투표인 셈인데 국내 시상식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상이란게 그 이름이 갖는 의미에 걸맞는 후보에게 주려고 만들어진 것인데, 한류 인기상이 국내 인기상이나 다를바 없어지는 사태가 해마다 되풀이된다. 팬들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쉽게 편법을 일삼는 태도를 버려야겠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건 기준을 확실히 하지않는 시상식 측의 태도다. 



외국 시상식 경우엔 매크로 등 편법적 투표 행위가 발각될 시 후보자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이 아예 투표 공지에 박혀있다.  



- 아이하트 라디오 시상식 투표규정




투표는 아니지만, 작년 보이밴드 원디렉션 출신 해리 스타일스 팬들이 VPN을 써서 미국 IP로 스트리밍을 하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빌보드 메인 차트는 본래 미국내 사용자들의 구매와 스트리밍만 성적에 반영하는데, 미국 외 국가의 팬들이 스타일스 신곡을 차트에 올리기 위해 VPN을 통해 미국 IP를 만들어 집단적으로 스트리밍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팬들의 이런 행위는 차트 조작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빌보드 차트에 정보를 제공하는 닐슨 측은 “우리는 VPN을 봉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면서 VPN 사용 등 편법에 강력히 대처함을 시사했다. 



- <The Verge> 2017.5.5





팬덤 화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게 투표다 보니, 시상식 투표는 이렇게 종종 현질, IP 우회 등이 난무하는 과열 양상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나 철없고 부화뇌동하기 쉬운 어린 팬들의 행동이라 단순 폄하하기엔 그 속내는 훨씬 복잡하다. 



아이돌 음악 시장은 일반 대중이 아닌 팬덤에 의해 굴러가다시피 하는 곳이다. 앨범을 사고,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공연을 보고, 굿즈를 사는 팬덤의 규모와 구매력이 바로 아이돌 가수의 수명을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투표로 가수에게 상 하나라도 더 안겨주고 그에 대한 기사 한줄이라도 더 나오게 해서, 그들의 위치를 공고히 해주고 싶어하는 팬들의 마음만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순전한 애정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국내 시상식들의 상도덕 부재다. 



유료 옵션을 폐지하고 투표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는 것만이 스스로의 공신력을 높이는 방법임을 국내 시상식들이 이제라도 깨닫길 바란다.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