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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28 방탄소년단 <ON> 뮤직비디오에 부쳐: 포스트 아포칼립틱 세계의 재현

인류는 이 땅에 문명을 일구었으나 역설적으로 그 문명으로 인해 망해갈 존재들이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를 비롯해 21세기 들어 주기적으로 일상을 흔들어놓는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을 지켜보면서 재앙의 근원은 문명과 모더니티 그리고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다는 학자들의 말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재앙 혹은 파국은 현대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가장 최전방에 있는 영화에서 무척이나 알뜰하게 써먹고 있는 소재다.자본주의의 파국조차도 자본주의적 생산에 이용되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문화라는게 기본적으로 당대의 무의식적 감정 구조를 드러낸다고 볼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이 파국적 감정은 어느 정도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이루는 서사는 기본적으로 멤버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와 갈등의 내용(교육시스템, 경쟁, 청춘의 방황, 자아의 흔들림)을 좀 더 서사화된 형태의 가상적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식으로 구사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Map of the Soul 앨범 시리즈부터는 모티프가 된 융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오브제들, 즉 그리스로마 신화와 니체의 사상에서 영향받은 모티프들이 뮤직비디오와 공연 구성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어둠의 상징인 포도와 뱀의 형상 같은 것들 말이다.

 

 

<ON> 역시 Map of the Soul 시리즈 앨범인 "7"의 타이틀 곡이니만큼 신화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무수한 상징들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폐허가 된 황무지, 화살을 맞고 죽어간 사람들과 비둘기, 노아의 방주, 거대한 벽이 가로막은 지평선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세팅의 분위기는 다름아닌 <매드 맥스>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틱 영화의 한 장면이다.

 

포스트 아포칼립틱 영화는 파국으로 인해 문명이 멸망한 뒤 원시적으로 돌아간 세계와 그속의 군상들을 그리는 영화로, 이런 종류의 영화 속에서는 늘 구원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어떻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알다시피,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 Map of the Soul:7은 융 철학에서 빌어온 그림자(shadow)와 자아(ego) 사이의 혼란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매우 개인적인 방탄소년단 자체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리부트하는 이번 앨범 속 곡들은 7년을 걸어오면서 맞닥뜨린 개인적 파국과 혼란 그리고 그런 혼란조차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다짐들이 담겨있다.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철학적 문제들을 가상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파국과 포스트 아포칼립틱한 배경은 이런 문제를 메타적으로 다루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세팅이었을 것이다. 7년차 그룹으로서 어떻게 자신들의 내면과 화해함으로써 영혼의 구원에 이를 것인가를 다루는 데 말이다. 

 

마치 <월드워Z>에서 좀비떼를 가로막기 위해 세운 거대한 벽 같은 곳이

폐허가 된 세계에서 만신창이가 된 멤버들과 사람들 눈앞에서 열리고

이윽고 황무지를 건너가 깍아지른듯한 태고의 절벽을 천천히 오르는 멤버들. 

 

내면의 고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새로운 영웅 서사로 재탄생한다. 

(약간 게임 영웅 서사 같다는 생각은 빅히트가 게임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지도)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