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고리아


<방탄소년단 팬덤, 세계 주류문화 질서를 뒤흔들다>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의 어마어마한 해외 인기를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곧잘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춤이 멋있어서, 얼굴이 잘 생겨서, 또는 SNS 시대의 수혜를 톡톡히 받아서라고. 


물론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방탄소년단에게 관심을 가지는 동기가 될 순 있지만, 서구 미디어가 한 목소리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헌신적인 팬덤”이라 평가하는 열정적인 방탄 팬덤의 행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서구에서 방탄이 이뤄낸 이제까지의 성공, 그리고 앞으로의 성공까지도 ‘전적으로 팬들 손에 달려있다’고 보는 게 현재 서구 미디어가 공유하는 시각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의 보이 밴드, 그것도 거의 모든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가수의 세계적인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앨범과 음원을 몇개씩 반복해 사들이고, 하루종일 음원을 스트리밍하며, 온갖 시상식에 엄청난 투표 화력을 쏟아붓는건 물론, 미디어와 라디오에 조직적으로 홍보를 하는 방탄 팬덤. 특히 해외 팬덤이 보여주는 열광과 헌신 대신,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일화를 먼저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이 일화의 트위터 원문은 @AskAKorean)



1997년 나는 한국에서 LA로 이민을 왔다. 


미국에 오기 전 영어 코스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ESL 수업을 듣지 않고 곧바로 10학년 정규수업에 편입하게 됐다. 그날은 생물수업을 두 번째로 듣는 날이었다. 수업시간에 퀴즈를 봤는데 생물 담당인 갤러허 선생님은 이제 막 전학을 왔으니 퀴즈는 안 봐도 된다고 했지만 어쨌든 시험지는 건네주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그 시험지를 마치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한다. 


‘광합성’에 대한 문제였다. 식물의 잎이 그려진 도표가 있었고, 그 잎으로 어떤 종류의 가스가 들어오고 무엇을 뿜어내는지를 쓰는 문제였다. 약 5분 정도 그 문제지를 쳐다보는 동안, 나는 좌절감으로 인해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광합성에 대한건 한국에서 7학년(주: 한국의 중학교 1학년)때 이미 배운 거였다. 나는 모든 답을 알고 있었다. 단, 그게 영어가 아니었을 뿐. 


이 시험이야말로 내가 새로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나는 모든 이들이 나같은 기분을 한번쯤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갑자기 멍청이가 되는 것 같은 기분.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약 5분후, 나는 답을 한국어로 적기 시작했다. 갤러허 선생님은 시험을 안 봐도 괜찮다 했지만 어쨌든 빈 답안지를 내긴 싫었다. 내가 갑자기 멍청이로 변한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이틀 후, 갤러허 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최고점은 만점을 받은 TK란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놀라서 내 시험지를 쳐다봤다. 한국어로 쓴 답안에 모두 채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어눌한 영어로) 선생님께 어떻게 채점을 매셨냐고 여쭤봤다. 그분은 내 답안지를 한국계 미국인인 수학 선생님께 보여 주였다고 했다. 그 수학 선생님도 한국어를 썩 잘하는 건 아니라서 한국어 사전까지 동원해서 내 답안지 채점하는걸 도와줬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이때 일을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자신의 학생을 위해 갤러허 선생님이 한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그 시험이 내 성적에 포함되지 않을거라 말했으므로, 그녀는 내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시험지를 채점한 바로 그 순간이 내 미국 이민생활의 행로를 바꿔놓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게 아니라는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되는 것,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영어를 배웠다.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내 졸업 연설은 마치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한 장면 같았다(주: 왕따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코미디영화). 횡설수설에 심한 외국인 액센트까지, 끔찍했다. 동급생들 표정도 황당해보였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단상에서 내려오라며 야유를 퍼붓지는 않았다. 


졸업 후 나는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로스쿨에 들어갔다. 지금 나는 변호사인 동시에 세상과 글로 소통하는 작가이다. 내가 영어로 쓴 글을 학생들에게 샘플로 보여준다는 작문 교수들의 말을 전해들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존 켈리(주: 백악관 비서실장)같은 멍청이가 비영어권 이민자는 미국에 동화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면, 나는 항상 갤러허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미국에는 아직 존 켈리 같은 사람보다는 갤러허 선생님 같은 사람이 더 많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제발 기억하길 바란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걸.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해외로부터 새롭게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새롭게 이 땅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를 바란다. 


바로 당신이, 누군가의 갤러허 선생님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주말 아침, 아직 잠에서 덜 깬 채로 트위터에서 이 글을 읽다가 나는 말 그대로 소리내어 울었다. 내용 자체가 인도주의적이기도 했지만, 열 살 무렵 내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2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막 마친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에 왔다. 지금이야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지만, 삼십여 년 전 그때 알파벳은 중학교나 가서야 배우는 거였다.


내가 살던 어배나(Urbana)엔 큰 대학이 있어서 아버지처럼 교환교수나 연구원으로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 동네에서는 그 자녀들과 한국어로 맘껏 뛰어 놀았지만, 학교에서는 달랐다. 한마디도 못하는 멍청이였다 나는.  


급식 시간이 내겐 악몽이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걸 알고 나를 괴롭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애들이 더 잔인하다. 디저트로 간만에 뭔가 맛있는게 나올때면, “너 이거 먹을거야? 안 먹을거지? 안 좋아하지?” 내가 틀린 대답을 할때까지 긍정문과 부정문을 섞어 다다다다 물어보는 애들한테 여러 번 후식을 뺏기곤 했다. 알겠지만 영어는 한국어와 긍정/부정 체계가 달라서 “안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걸 좋아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해선 안된다. 그럼 디저트를 뺏긴다.        


급식 시간 내내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간혹 다가오는 애들은 그렇게 놀리며 내 디저트를 뺏어가는 애들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내게 같은 반 애들 두엇이 다가왔다.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하고 있는데, 생글거리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예쁜 빨간색 하트 스티커였다. 설마 이걸 내게 주는건가? 하는데 손짓발짓 끝에 알아들은 말이 스티커를 살 생각 없냐는 거였다. 한참 고민 끝에 그래도 혹시나 이게 일종의 우정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스티커를 샀다. 


문제는 몇 시간 뒤 일어났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숙제에 잘 했다는 표시로 붙여주는 스티커가 없어졌다는 거였다. 바로 내가 산 그 스티커였다. 스티커 종이에서 막 하나를 떼어 노트에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눈길이 내게 쏠리고 숨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두가 내 손에 든 스티커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프도록 알 수 있었다. 나는 온 영혼을 다해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그 스티커를 사게 되었는지 내 짝꿍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보던 흑인 짝꿍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담임선생님에게로 갔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느낌상)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한 말은 잘 알겠어. 하지만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자”. 


아, 이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 아니면 귀찮아서든 뭐든 최소한 이 오명에서 나를 건져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 나는 그렇게 영어도 못하는 바보인 동시에 도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갤러허 선생님같은 분이 없었다. 그저 운이 없었다 해두자. 


길든 짧든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타언어권에서 순식간에 멍청이가 되는 느낌을 한번쯤은 맛봤을 것이다. 좀 더 머리가 큰 뒤 대학원 때문에 다시 미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토론 참여가 필수인 비평 수업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데만 시간을 다 보냈다. 말을 하면서 정리가 된다는 것은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 내가 몇시간 동안 만들어놓은 문장을 겨우 뱉으면 수업이 끝났다. 그동안 네이티브들은 별 통찰력도 없어보이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즐겁게 수업을 장악했다. ‘한국말로 했으면 니들은 다 죽었어’는 그저 마음의 소리일뿐, 언어의 장벽 앞에서 나의 지성은 무용했다. 1세계의 벽 앞에 선 제 3세계 인구의 서글픔이었다. 


방탄소년단 해외 팬덤을 관찰하면서 내가 참 흥미롭다 느꼈던 것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이런 좌절감이 역전돼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네이버 V앱의 <달려라 방탄> 같은 몇몇 컨텐트를 제외하고, 방탄의 대부분 컨텐트는 영어 자막이 없는 채로 나온다. 물론 채 얼마 되지 않아 자발적인 팬 번역가들 일명 ‘번역계’가 자막본을 내놓지만, 그 시간동안 타들어가는 팬들의 속마음은 이런 짤을 유행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방탄 멤버가 V앱에서 라이브 방송이라도 할라치면, 장장 1시간 가까이를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버텨야한다- 물론 그 순간에도 수억개의 하트와 수십만개의 댓글을 날리는걸 잊지 않는다. 라이브 방송처럼 이렇게 긴 컨텐트의 경우, 제대로 된 번역본이 뜰 때까지 이틀 내지 삼일이 걸릴 때도 있다. 


그뿐인가. 앨범이나 콘서트 소식 등 중요한 공지를 대부분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하는 기획사 때문에, ‘twelve hit phobia’ 즉 ‘열두시 땡 공포증’이라는 말이 외국 팬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돌았다. 한국 팬들이야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편안히 공지를 받을 수 있지만, 바쁜 아침 시간이나 한참 회사나 학교에서 일과 중인 외국 팬들에게, 이 한국시간으로 자정은 너무나 가혹한 타임라인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말로 노래하는 가수의 팬이 된다는 게 이런 거란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늘도 수백만의 외국 팬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한국 시간(KST)으로 설정해 놓는걸 잊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방탄의 해외 팬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기다림과 답답함을 벗 삼은 채 일상의 바이오리듬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언어와 시차의 위계가 역전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디 너희들이 당하니까 어떠냐? 우리 비영어권 출신의 괴로움을 이제 알겠지?“ 같은 고소한 마음이 내심 안드는건 아니지만, 나는 이 현상 이면에 훨씬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방탄소년단의 팬인 라프란즈 데이비스(@RafranzDavis)는 <MEDIUM>에 기고한 <한 케이팝 그룹이 어떻게 나를 장벽 너머로 이끌었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직업 때문에 전 세계의 교육자들과 교류했지만 한번도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때론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도 가르쳐봤지만,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 적이 없었다. 결국엔 그들이 영어를 배워 언젠가 나와 영어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BTS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장벽과 편견이 존재한다. 그런 장벽을 만날 때면, 마치 내게 있어 BTS 같은 존재가 나타나, 여러분이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1세계 시민으로서의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 없는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 됐을 때 겪는 이런 역지사지의 순간들은, 당혹감과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타 문화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준다. 


게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탄 팬덤에 깊숙이 들어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 노래 가사를 들으며 울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탄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오열하기 시작하는 외국 팬들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세계 평화는 정치가들 손에 달려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방탄의 팬 번역가들이 아무리 성실히 그리고 재빨리 번역을 한다 해도,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 답답함 그리고 한국어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의 공백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례로, 해외 팬들은 초창기 방탄의 스타일링이나 발언에서 흑인에 대한 미묘한 인종주의적 선입견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표시했다(이는 비단 방탄뿐 아니라 케이팝 전체에서 곧잘 발견되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멤버의 진솔하고도 구체적인 사과가 나오자, 서양권 문화의 특성상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고쳐나가려는 태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팬덤은 더욱 강력하게 결속되었다.  


문화와 문화가 감정적으로 서로 이어질 때의 감동. 게다가 세계 질서 아래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고 비주류의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주류 문화권 팬들의 태도에서 나는, 희망없는 세계에 불어오는 시원한 찬바람 한줄기를 느꼈다. 전지구적 주류문화 질서 아래서 앞으로도 나는 종종 ‘멍청이가 돼버린 기분’에 사로잡히겠지만, 최소한 세계의 한 켠에서는 문화 교차를 통한 ‘역지사지’, 그로 인한 타인에 대한 더 넓은 이해가 실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말이다.    


시작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였지만, 점점 서로의 문화와 언어에 새겨진 ‘차이’와 ‘같음’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도록 계기가 되어준 방탄소년단에 감사한다. 더불어, 곧 발매될 새 앨범 Love Yourself: TEAR의 세계적 성공을 전 세계 아미와 함께 기원한다. 


Teamwork Makes the Dream Work!   




PS: 이번 에피소드는 팬 아닌 일반인들이 좀 더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오마이뉴스 블로그 뉴스에 올렸습니다. 아래 위젯은 오마이뉴스에 연동되는 건데, 원고료는 안주셔도 상관없지만 추천을 많이 눌러주시면 아무래도 일반인 분들께 좀 더 노출이 되지 않을까요. 이게 다 방탄 홍보다 생각하시고^^






Posted by 미와카주


<번 더 스테이지: 아름다움은 언제나 과정에 숨어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몇 시간 후에 공개될 <번 더 스테이지>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번 더 스테이지>는 지난 2017년의 방탄 Wings 월드 투어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유튜브 레드를 통해 지난 4월부터 매주 1화씩 공개돼 왔다. 드디어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다).



다큐를 시작하는 1화에서 슈가와 RM은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수많은 콘텐츠와 영상을 통해 우리 모습을 팬들에게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도 실은 엄청 가리고 약점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좀 더 날 것의 우리 무대 뒤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다’라는걸 보여주고 싶어요”



날 것의 모습이라. 



V앱과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제공되는 수많은, 그야말로 다 보는게 불가능할 정도의 방탄 관련 콘텐츠들. 그걸 뛰어넘는 차별화된 솔직함을 보여주겠다는 얘기인가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리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영화 전공자로서 촬영과 편집의 원리가 얼마나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가동되는지 십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솔직함을 약점으로 인지하는 일부 팬들의 반발을 회사가 결코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남겨둔 지금, 고백하자면 나는 울었다. 


다큐가 너무 슬퍼서도, 격한 팬심의 발로도 아니고, 그저 매번 에피소드가 시작되기만 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삐져나왔다. 그리 오래 된 옛일도 아닌 불과 작년 투어의 무대 비하인드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울다니. 팬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난 어딘가 고장난걸까. 위기의 중년이 겪는다는 ‘고장난 수도꼭지 신드롬’도 아니고, 도대체 이 다큐의 뭐가 어떻길래 나는 울기씩이나 했을까. 다큐의 내용을 살펴보자. 




<번 더 스테이지>는 월드 투어 무대와 무대 뒤의 모습, 그리고 투어 사이사이 멤버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을 보여준다. 투어 도중 이들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싸가지고 온 장비를 호텔방에 풀어놓고 음악 작업을 하거나, 투어가 열리는 도시의 미술관이나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고, 유명하다는 핫도그를 사먹고, 바다에 가서 잠깐 난 짬을 만끽한다 (무대 동선에 대한 진과 뷔의 언쟁이 잠시 나오지만, 언제나 그랬듯 멤버 모두가 모여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으며 해결하는 전형적인 ‘방탄식 갈등 해결법’을 보여준다).  

 

다큐 에피소드 전반부마다 무대에서 공연 전 리허설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시퀀스가 있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리허설을 하는 멤버들은, 때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진지하게 디렉터와 무대 논의를 하고, 때론 서로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면서 무대와 무대 사이의 리허설 타임을 보낸다.  



그중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사이사이 멤버들이 빈 객석을 바라보는 어떤 찰나의 표정들이었다.     






이제 갓 이십대 초중반에 들어선 멤버들은, 자신들의 세계적 명성에 막 불붙은 시기에 시작된 투어의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무대가 주는 압박감과 두려움, 팬들에 대한 감사... 거기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을거다. 







멤버들의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텅 빈 객석 앞에 서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느닷없이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혔다. 


그건 마치, 이 모든 열광이 가라앉고 조명이 꺼졌을 때, 그러니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방탄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느낄 감정을 대리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열광과 갈채, 지난한 연습의 과정, 압박감과 성취감. 이 모든 걸 뒤돌아보는 방탄의 뒷모습을 미리 시간을 거슬러 몇십년뒤의 미래에서 이들과 함께 보고 있는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인간은 유한하다. 백년도 못되는 삶을 살다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이 유한함이야말로 인간을 매일 충만하게 살도록 부추기는 원동력이라는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명성 역시 유한하다. 방탄의 일거수일투족에 숨 넘어가고 죽고 사는 팬들의 열광도 때가 되면 맥주 위의 거품처럼 자연스레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명성 너머, 시대의 아이콘으로 무한히 각인된 이름들을 알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롤링 스톤즈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비틀즈가 그랬다. 서태지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방탄도 시대의 공기가 허락한다면 아마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방탄의 뮤직 다큐멘터리가 선보이는 세계는 기존의 전설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와 비교했을 때 사뭇 특이한 점이 있다. 일례로, 롤링 스톤즈의 투어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큐 역사에 남을 만큼의 반향을 일으켰다. 무대 위의 열광과 무대 뒤에서의 소동 및 개인사를 보여주는 그들의 다큐는 마약, 록큰롤, 프리 섹스가 만연했던 60년대라는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걸작으로 꼽힌다. 범상한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아티스트의 기행이 예술의 표식으로 통용되곤 하는 흐름은 여타 뮤직 다큐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번 더 스테이지>는 한 뼘 다르다. 투어 사이의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는 방법이래봤자 함께 모여 밥 먹고 수다 떨고 작업하고 게임하고 관광을 하는게 다다. 이런 모습은 아티스트의 남다른 면모를 강조해왔던 기존의 다큐의 방식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있다. 더할 나위없이 평범하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무언가가 반짝인다. 


신비화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저 나나 내 주변 친구들이 흔히 할 법한 일들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좀더 나아가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을 멤버들은 마치 짠 듯이 쏟아낸다. 열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그들의 일상은 지난한 연습과 자기 반성의 과정으로 채워져있다. 반짝이는 단 한순간의 열광과 환호성을 위해 그들은 매일을 마치 수도승처럼 자기 계발의 순간으로 채워넣는다.  



방탄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 피디는 방탄이 ‘친근한 이웃의 오빠’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친근한 옆집 애들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영웅. 그들의 그 ‘일상’이 어떤 피와 땀과 눈물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지 <번 더 스테이지>는 또 한번 증명해준다.            



그들의 커리어를 한 단계 도약시킨 2017년을 지나 2018년에 온 우리들. 우리는 <번 더 스테이지>를 통해 1년 뒤의 미래에서 그들의 과거를 목격하고 있다. 동시에 몇십년 뒤의 미래에 서서 지금 한창때의 방탄이 써나가는 서사를 다정하게 회고하는 마음으로 이 다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알고 있다. 이 반짝이는 무대 너머에서 그들이 얼마나 매일을 충실하게 피, 땀, 눈물 그리고 웃음으로 써나가고 있는지. 나의 이 노스탤지어는 너희의 충실한 오늘에 대한 감사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굴러갈 시대의 수레바퀴가 그들 편에 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Posted by 미와카주

<아미 팬덤의 자선 활동>




지난 5월 5일 새벽, 미국 ABC Eyewitness News Ch.7의 기자이자 앵커인 George Pennacchio가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를 언급하며 트윗을 하나 올렸다. 





- George Pennacchio 트윗



스타워즈 팬들의 자선 단체인 Force For Change가 하는 미국 유니세프 자선 미션에 방탄소년단 팬들도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미션의 내용은 #Roar For Change 라는 해시태그를 1번 올릴 때마다 1달러씩 유니세프에 기부돼 굶주린 어린이들을 돕게 되는 것이다. 



글이 올라온 즉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히 해시태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향후 2년간 음반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LoveMyself #EndViolence 프로젝트를 현재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기도 해서 아미들 역시 기부에 적극적으로 동참 의지를 보였다. 


(방탄소년단의 행보와 발맞춰 아미들의 자선활동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각 나라의 아미들이 자국에서 다양한 자선 활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OneInAnArmy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발족, 시리아 등지에서의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원래 이 스타워즈 기부미션은 5/25일까지 20여일 동안 백만 달러를 목표로 발족된 프로젝트였는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국의 아미가 참여하자마자 5시간만에 백만 트윗이 훌쩍 넘어 순식간에 기부 상한선을 넘어섰다. 아미에게 처음 이 미션을 제안한 ABC 방송국 캐스터조차도 이 상황에 깜짝 놀라 다음 같은 트윗을 올렸다.



- George Pennacchio 트윗


 

“이런 팬들을 가진 방탄소년단은 정말 행운아네요. 여러분께 진실한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곧이어, 이 미션을 주관한 스타워즈 공식계정도 백만달러 기부미션을 순식간에 달성하는데 동참해준 아미에게 감사하는 트윗을 올렸다.




- @starwars 트윗



스타워즈 공식계정의 트윗 아래 달린 전세계 아미들의 멘션은 찡한 데가 있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고, 세계를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준 게 다름아닌 방탄소년단이었다며 그들은 모든 공을 방탄소년단에게 돌렸다. 



여기서 하나 재밌는건, 미국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 RM이 밝힌 스타워즈와 방탄과의 연관성이다. 




-  Rolling Stone  인터뷰 중에서




나온지 몇십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타워즈나 마블의 세계관처럼 자신들도 방탄의 세계관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거였다. 이런 그들의 소망은 2015년에 나온 화양연화 앨범의 세계관이 2018년 현재까지 이어짐으로써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를 BU(방탄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방탄 콘텐트 속에 녹여 현재까지 4년여 동안 일관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팬들은 새로운 콘텐트가 나올때마다 일명 ‘궁예’(짐작)를 통해 이 내용이 방탄 세계관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매번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팬덤의 자선활동은 국내 팬덤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서태지 팬덤 같은 경우는 지속적인 자선, 봉사활동은 물론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공론장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혹자는 팬덤이 벌이는 자선활동이 단순히 자신의 가수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비나 걸면서 아무 것에도 기여하지 않는 것보단 첫 동기야 어찌됐든 실질적 도움을 주기위해 움직이는 팬덤의 행위가 이 세계에 이바지하는 바가 많다 본다.        



방탄소년단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아미들이야말로, 어쩌면 방탄소년단이 세상에 내놓은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Posted by 미와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