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고리아

한국영화의 전통에서 슈퍼히어로물을 찾아보라면 최동훈의 <전우치> 정도가 있을까. (우연찮게도 이 영화의 주연 역시 강동원이다) 


얼핏, 한국영화와 히어로물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그외 수많은 맨들이 존재하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경험에서 비롯된 자경단주의에서 그 존립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국가권력에 반하지 않으면서 무능한 경찰력과 군사력을 보완해주는 존재로서의 자경단. 


이에 비해 역사의 갈피마다 강력한 중앙집중식 권력과 이에 대항하는 반정권 세력의 대립이 빈번했던 한국에서는 '자경단'이라는 당대 권력의 보완적 세력이 열광적 지지를 얻을 이유가 별로 없어보인다. 


<검은 사제들>은 할리우드산 슈퍼히어로물을 보고 자란 세대가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적 재현의 전통(또는 강박) 위에 만들어놓은 아주 묘한 한국식 미스테리 스릴러 엑소시스트 히어로물이다. (마치 떡과 케잌의 조합같달까.) 


슈퍼히어로물 혹은 서양식 첩보스릴러 영화의 장르적 특징은 곳곳에 묻어난다. 


현대 이탈리아의 중세적 예배당. 

악령의 출현을 근심하는 작은 대화들로 이루어진 불길한 오프닝 시퀀스.  

비밀임무의 실패는 더 큰 재난을 불러오고.

이제 임무는 영화의 주인공에게 떠넘겨진다. 

이것은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같은 미스테리 스릴러물에서 흔히 보아 왔던 전개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영화속에 본격적으로 서울의 풍경이 담기면서부터다.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마치 서울 속의 작은 서울처럼 자리한 명동. 

버텨온 세월만큼 온갖 역사적, 사회적 희비를 다 간직한 명동성당. 

그리고 지금은 무개성의 관광명소가 되버렸지만

한때 예술과 멋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좁은 뒷골목.

그 속에 벌집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건물들. 

그 건물의 낭떠러지 같은 오래된 계단들.

그 안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구마의식. 


단지 그 골목에서 몇발자국만 나오면 되는 얼마 안되는 물리적 거리로 나뉘는 

빛과 그림자, 현실과 신화, 쾌락과 공포의 심리적 갈림길. 


한국적 미스터리 엑소시즘 영화의 공간적 사용이 어때야 하는가를 

무척 영리하게 보여주는 영화라 생각해 일단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서양적인 구마의식과 토착적 공간의 이질적 어울림에 솔깃해 할 무렵

개인사의 어둠에 사로잡힌 최부제가 구마 공간을 뛰쳐나가고 나서부터

영화를 보던 나는 급격히 맥이 탁 하고 풀리는 경험을 한다. 


아... 저놈의 한국적 신파.

 

한쪽 신발을 잃고 찾아온 과거의 나와 맨발로 선 현재의 최부제가 대면해 화해하는 장면의 그 쓰잘데없이 길고 긴 감정 낭비 씬들. 영화의 처음, 한국 카톨릭 교단과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촌스럽지 않게 뉘앙스로 극을 이끌고 관객을 성인 대접해줬던 공을 영화는 이 한씬으로 모조리 날려버리고야 만다. 

(각성하자 한.국.신.파.) 


그렇게 길게, 오래, 성의껏, 타임라인을 쭉쭉 늘여가며 보여주지 않아도 우린 알아요. 

얘가 두렵다는거. 이겨내고 싶어한다는거. 돌아갈 빌미를 찾는다는 것까지도.  


그리고 다시 이어진 마지막 대악령을 쫓기위한 구마의식. 

귀신들린 소녀는 어마어마한 연기 끝에 끝내 절명하고 여기서 영화는 포기가 안된 신파의 똥물을 다시 한번 투척한다.


박소담이 미친 열연으로 잡아놓은 악령의 분위기에 김윤석의 오열하는 연기가 찬물을 촤악~ 하고 끼얹는다. 푸시식~ 화면에서 김이 빠지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그렇게 티나게 울지않아도 안다니까요. 

그리고 원래 그런 캐릭터도 아니잖아요. 

성숙하게 갈무리된 어른의 감정을 보여주길 바라는건 그래서 주제와 걸맞는 불가해성을 느끼길 바라는 건 오직 나만의 헛된 꿈인가요. 


영화의 마지막. 

악령의 숙주가 될 처지에 이르른 최부제는 스스로 강물로 뛰어내려 악을 처단한다. 


그리고, 소녀도 깨어나고 최부제도 강에서 살아돌아온다. 


입가엔 씨익 웃음을 얹고 8등신 뒷모습을 어둠속으로 재촉한 채 

관객에게 프리퀄적인 클리셰를 선사하며 사라진다.


To Be Continued....의 예감을. 

"최부제, 악령 쫓는 젊은 사제의 탄생" 같은 제목을 화면위에 숨긴 채로.    

     

Posted by 미와카주